여수 순천 반란사건은 제주도 폭동을 진압하려고 대기중인 국군 14연대 안에서
남로당 군인들이 군장교들을 죽이며 폭동을 일으켜
여수와 순천에서 빨갱이들에 의한 대단위 민간인 학살까지 벌어진 사건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김구에게 그 불똥이 튄다.
▼ 여수 순천에서 양민들을 집단 학살한 빨갱이들의 만행
그 시작은 광복군 총 참모장 출신 철기 이범석 장군이였다.
당시 이범석은 극우정객이라고 표현하며 김구를 지목했고
김구는 즉각 반박성명을 발표하였고 공개적으로 사건에 대한 평가까지 했다.
청산리 전투 ,자유시참변을 경험한 광복군 넘버투 이범석
독립운동가 이범석의 노골적인 김구공격
一部陸軍部隊叛亂騷擾(일부육군부대반란소요) 共產系列(공산계열)과 極右分子(극우분자)도 策動(책동)
동아일보 | 1948.10.22
김구의 반박 기사
極右分子參與說(극우분자참여설) 理解(이해)키困難(곤란) 金九氏否定(김구씨부정)
동아일보 | 1948.10.28
여수.순천 반란 사건에 대한 김구의 평가
亡國恥辱不免(망국치욕불면) 叛亂(반란)에金九氏談(김구씨담)
동아일보 | 1948.10.31 기사(뉴스)
그렇다면 이범석은 왜 극우 김구를 지목했을까?
바로 여수.순천 반란 직전에 김구 추종자였던 14연대장 오동기를 체포하면서 확신을 가진듯 했다.
이와 관련된 국회 보고서를 봐도 알수가 있다.
제1회 124차 국회본회의에서 李範奭 국무총리, ‘1948년 4월 이후 국내 소란사건’에 대하여 종합 보고
1948년 12월 08일 제1회 국회속기록 제124호, 1240~1256쪽 1948년 12월 08일
第三節 호남사건
第一. 경과
가. 원인
1. 南勞黨의 세포가 부대 내에 침투한 것
2. 제주도에 출동시 제14연대내 좌익 세포에게 당 지령이 있는 것
3. 지방인 좌익 청년단체 급 학교 내에 좌익 세포망이 군세포망에 速繫된 것
4. 吳東起(오동기)소령 체포로 말미암아 극우극좌의 합작음모가 폭로한 것
나. 梗槪
10월 19일 제주도사건 진압차 출동하려던 여수 제14연대는 南勞黨계열 분자 지도하에 3명의 장교 급 일부 40명 내외 하사관은 각 대대장의 결사적 제지에도 불구하고 반란 폭동화하여 동월 20일 8시 여수를 완전 점령하는 한편 지방 좌익단체 급 학생 등으로 인민군을 편성하며, 동일 8시 순천 도착, 계속 점령 후 그 세력은 鶴口·寶城·筏橋·高興 등등 각지에 引火하여 살인, 방화, 경찰서 파괴, 약탈, 강간 등등 暴逆無道 천인공로의 참사를 감행하였음.
第四節 대구사건
第一. 경과
가. 원인
1. 연대 내에 南勞黨 세포가 침투되어 있었음.
2. 南勞黨 지령에 의하여 11월 3일 지방인과 같이 폭동화 하려는 바, 11월 1일 미연에 발각되었다는 것
나. 梗槪
11월 2일 11시 0분 군기장교 趙章弼 소위는 隊內 불순분자를 체포차 연대 본부에 주모자를 연행시 연대반란 주모자의 不意 발사로 사살 당하였음. 그 주모자는 반대로 여수방면 반란병이 대구로 내습하였다. 僞瞞하여 부대를 대동 후, 폭동화 하려 하였으나 군기대의 결사적 행동과 미군의 협조로 진압되었으며 일부 약 30명은 金泉방면으로 도망 金泉부대와 합류하려던 바 여의치 못하여 5명을 제외한 반도는 전원 투항하였으며 이에 호의를 가졌던 金泉 중대장은 체포하였음.
第二. 처치
제6연대 군기대를 중심으로 일시 방어하며 부산연대에서 일부 병력을 급파하여 진압하였음.
세부는 별표 제3에 있음.
좌파들은 오동기 최능진 검거를 서로 모른다는 이유로 사건을 조작이라 하여 이를 부정한다.
OK 그럼 혁명 의용군 사건이 조작이고 실체조차 없다고 결론 내려보자 ㅋ
그런데 뜻밖에도 오동기라는 이름이 소련 군정 책임자인 레베데프 비망록에서 나온다.
레베데프가 기록한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좌 스티코프 우 레베데프 (애송이 김일성을 키워준 삼촌들 )
▲ 1948년 10월 22일 남한상황
1. 병사들이 탄 5대의 군함이 봉기자들에게 가세했다.
2. 제 14연대장 오동기가 체포 되었다.
- 어떻게 할것인가 . 가세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여수 순천 고흥 보성 곡성 순창 하동 광양 구례
- 두 지방도시 광주와 전주에서 전투가 발생했다.
- 조용히 노동당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1948년 11월 5일
- 대구시 11월 2일 12시 새로운 폭동, 경상북도
- 30명이 기차에 앉아 있다가 들고 일어났다.
- 폭동이 6연대로, 연대가 미군에 의해 포위 되었다.
출처 레베데프 비망록 187p - 188p
레베데프 비망록에는 남북 연석회담시기에 김구가 김일성에게 묘한 제안을 한것이 있는데
그 실체가 궁금하다.
어떤 의도의 제안이였는지 궁금해짐...
1948년 5월 3일
김구와 김일성 1시간 30분동안 회담
회담 분위기는 좋았다.
1. 한독당 당원 석방 문제에 대해
김 구 - 감옥에 있는데 우리 당원들을 석방시켜라
김일성 - 한독 당원이여서 체포한것이 아니고 그들은 테러분자들이다.
김 구 - 테러 분자들이면 석방시키지 말라 (사족 - 좀 띠용스러운 답변)
2. 조만식에 대해
김 구 - 조만식등은 식사등이 형편없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조만식이 나와함께 남한으로 갈수 있는 선물을 달라
나는 늙은이다 나를 아껴야 한다.
남한의 공산당원들에게 원칙적인 문제(38선 철폐등)를 해결 해야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미리 전해라
원칙적인 문제라면 그들과 대화 할 수 있다.
3. 남한 송전 문제에 대해
김 구 - 당신들이 단전하려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기료가 북한보다 비싸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기료를 제때에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들에게 전기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자주 방송을 해라.
그러면 우리도 주장할 근거가 생긴다.
4. 자신의 장래 활동에 대해
김 구 - 만일 미국인들이 나를 탄압한다면 북한에서 나에게 정치적 피난처를 제공할수 있는가?
김일성 - 긍정적으로 대답
레베데프 비망록 p185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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