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사진은 많이들 보았을 거야
'하일 히틀러 Heil Hitler' 또는 '지크 하일 Sieg Heil'이라 불리는
나치식 경례를 거부하고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나이가 찍힌 사진이야
이 사진은 1936년 6월 13일 함부르크 블로흠+포스 조선소에서 열린
나치 독일 해군 Kriegsmarine(전쟁해군)의 훈련함이자 범선인
호르스트 베셀호의 진수식에 참가한 히틀러에게 조선소의 노동자들이 경례하는 장면을 찍은 건데
유일하게 경례를 안한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나이가 바로
아우구스트 란드메서 August Landmesser라는 조선소 노동자야 (1910년 생)
나치 해군 훈련 범선 '호르스트 베셀', 1937년
훈련 범선 호르스트 베셀은 나치당의 초기 멤버로
1930년 독일 공산당원과의 언쟁 중 총격으로 사망한 호르스트 베셀을 기리어 명명했는데
호르스트 베셀
이 베셀은 나치의 당가인 '깃발을 높이 들어라 Die Fahne Hoch'라는 곡의 작사자로 알려졌다.
근데 베셀이란 작자는 공산당원의 총을 맞은 후 달려온 의사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응급 처치를 거부한 채 병원을 찾게 되고 이미 치료 시간을 놓쳐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미국 해안경비대 USCGC 이글호
호르스트 베셀호는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져서 현재 미국 해안경비대의 훈련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르마 에커
어쨌든 이 란드메서라는 사나이는 직업을 얻기 위해
1931년 나치당에 가입하였지만 1935년 유태인 처녀인 이르마 에커와 약혼을 하자 나치당에서 추방된다
하지만 란드메서는 '유태인과의 결혼 금지령 Nuremberg Law'이 내려지기 1개월 전에
결혼 등록에 성공하고 1935년 말에 첫 딸인 잉그리드를 얻는다
장녀 잉그리드. 고아원 등록 사진
유태인 탄압이 심해지자
1937년 아우구스트와 이르마는 딸과 함께 덴마크로 도망가려다 체포되어
아우구스트는 '인종오염죄 Rassenschande'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이르마가 유태인인 줄 몰랐었다는 아우구스트의 소명과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으나
향후 이르마와 관계를 끊으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이르마와 두 아이
하지만 이 땐 이미 이르마가 두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이 때문에 아우구스트는 뵈게무어 수용소에 2년 6개월 노역형에 처해진 후 둘째 딸 이레네가 태어난다
남편 아우구스트가 수감되자 이르마 역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여러 유태인 수용소를 옮겨 다닌 후
결국 베른부르크의 가스실에서 다른 14,000 여명의 유태인들과 함께 독살 당한다
이르마의 사망 사실도 모른 채 북독일 로슈토크의 한 공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아우구스트는
전황이 어려워지자 1944년 '집행유예대대 Strafbataillion'이라는
강제 노역부대에 징집되어 그 해 10월 크로아티아에서 전선에서 노역 중 총상으로 사망한다
입양된 가정에서의 이레네
아우구스트와 이르마의 두 아이는 모두 함부르크 시립 고아원에 맡겨졌으나
첫째 딸 잉그리드는 외할머니가 데려가 키웠고 둘째 딸 이레네는 입양되었다
전후 란드메서 부부의 공식 사망 처리와 함께
결혼 사실이 다시 인정되었고 두 딸 모두 란드메서 성을 회복한다
1991년 독일의 '디 자이트 Die Zeit'가
'히틀러에게 경례하지 않는 사나이'라는 사진을 처음으로 싣자
잉그리드와 이레네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지고 있던 사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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