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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2

아르헨티나가 겪은 경제난 역사 정리... 좌파 포퓰리즘 하다가 망한 나라 3대장이 그리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이다. 한국인들은 그리스와 베네수엘라의 문제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원조 포퓰리스트 후안 페론까지만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공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워낙 경제난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어느 한 시대만을 딱 집어서 집중적으로 학습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경우는 파판드레우 정권,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차베스-마두로 정권) 게다가 21세기에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룰라 정권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경제정책 실패 사례들의 교과서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관심을 덜 받고 있다. 여기서는 후안 페론이 죽은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1.. 2018. 9. 11.
1975년 아르헨티나 Rodrigazo에 대해서... 때는 1975년, 아르헨티나.거대한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그 지옥의 문, 로드리가소(Rodrigazo)라 불리우는 헬게이트에 대해서 알아보자 1. 망국병: 페론의 그림자당시의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 이사벨 페론이었다.페론이라는 성이 귀에 익지?그렇다. 이사벨은 포퓰리즘의 원조로 불리우는 후안 페론의 세번째 부인이다. (두번째 부인이 '에비타'로 알려진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이사벨은 당시 여기저기 떠돌며 공연을 하던 댄서였다. 나이로는 후안보다 무려 35세나 어렸다.이사벨은 1931년생이었으니 후안을 만날 당시에는 겨우 29세였다.후안 페론은 에비타를 앞세웠던 포퓰리즘 통치 도중 1955년 군사 쿠데타에 의해 쫓겨난 후였고 1960년 이사벨을 만날 당시에는 파나마에서 부활을 다짐하.. 201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