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1 의화단의 난, 청나라의 똥꼬쇼, 그리고 문재인 보유국 아편전쟁에서 쌍코피 터지고 서양 열강들의 힘을 깨닫게 된 청나라. 청나라 조정은 서양 각국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고 이것은 '양무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하지만 청나라의 비효율적인 관료제나 국민성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양의 문물만 져오겠다는 발상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었고 청나라 조정의 과도한 서양인 우대 정책은 중국 사회 내부에서 반발을 낳게 된다.(일본의 장점을 설명하면 일뽕 타령을 하는 새끼들이 나오는 것처럼.) 게다가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양무운동은 급속도로 속도를 잃게 된다.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서양은 고사하고 옛날에 해적질이나 하던 놈들조차도 못 이기니 무슨 의미가 있냐는 절망감이었다.당시의 황제는 광서제였는데 (대원군에게 맞서 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자신의.. 2019. 2.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