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진열장/여러정보들 집합소

WWE 스타 언터테이커의 무명 시절...

by JiNan's 2021. 3. 27.
반응형

언더테이커의 본명은 마크 윌리엄 켈러웨이

WWE 프로필에서는 캘리포니아 동쪽에 있는 미국에서 제일 기온이 높이 올라가는 지역

데스 벨리(Death Valley)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965년에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났고, 4형제 중의 막내였음.

 

어릴 때부터 키가 컸던 켈러웨이는 농구를 했음.

공교롭게도 그의 동생 역으로 WWE에서 활약한 케인(글렌 제이콥스)도 농구 선수 출신임.

특이한 경력인데 캘러웨이는 대학교를 두번 갔는데, 농구 장학금을 받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처음에는 안젤리나 칼리지라는 휴스턴의 전문대에 들어가 그곳 농구부에서 활약했고
그 다음에는 4년제 사립대학인 휴스턴 웨즐레언 대학교에 들어가 농구 장학생으로 뛰었다.(33번이 켈러웨이)
포지션은 센터였다.

캘러웨이의 꿈은 NBA에서 뛰는 거였는데 실력 미달로 결국 NBA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농구리그에서 캘러웨이에게 접촉을 해왔는데

텍사스를 떠나는 게 두려웠던 캘러웨이는 그 오퍼를 거절하고
큰 체격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프로레슬러가 될 결심을 했다.

그런데 낯을 많이 가리는 캘러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한편, 일주일에 한번 프로레슬링 스쿨에 나가 수업을 받았다.
자기를 시합에 써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프로모터 사무실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도 캘러웨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더테이커는 자서전에서 그 짓을 8개월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가 유명 프로레슬러였고

당시 프로모터로 뛰고 있던 프리츠 폰 에릭(Fritz von Erich)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캘러웨이를 보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 빨간머리 청년은 누구야?"고 물었다.
사람들은 다들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폰 에릭이 "이번주 금요일에 저 친구 시합을 시키지"하고 말했다.
나중에 켈러웨이는 폰 에릭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의 외모가 폰 에릭의 죽은 맏아들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었다.

그리고 켈러웨이는 Texas Red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했지만,

그는 그냥 키가 크고 운동신경이 좋은 평범한 레슬러에 불과했다.
카리스마가 전혀 없었다.

WWF에 옮기기 전의 켈러웨이는 다른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지역마다 다른 링네임으로 시합을 하던 journeyman이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통에 가정을 갖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스타가 될 거라는 희망 하나로 박봉에 만족해야 했다.

참으로 기구한 신세였다.

무명 시절, 켈러웨이는 일본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의 태그팀 파트너가 바로 스캇 홀(왼쪽)이다.

나중에 스캇 홀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Scarface에서 감명을 받아

머리털을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이쑤시개를 질겅질겅 씹고 다니며,
쿠바 악센트 섞인 영어로 떠들어대는 마약상 기믹인

'면도칼 라몬(Razor Ramon)'으로 대박을 치게 된다.

 

 

켈러웨이가 환골탈태하게 된 계기는 폴 비어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본명은 윌리엄 무디. 그는 실제로 장의사로 일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켈러웨이의 운동신경에 주목하고 그의 멘토가 되면서 켈러웨이의 실력은 쑥쑥 성장하게 된다.
폴 비어러와 켈러웨이는 시합을 되돌려보면서 기술 하나하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의논했다.

1990년, 폴 비어러의 추천을 받은 빈스 맥맨은 켈러웨이를 발탁한다.
그리고 당시 무적 기믹으로 큰 인기를 끌던 헐크호건이나 워리어의 대항마로 켈러웨이를 투입하고자 했다.
폴 비어러는 자신이 좋아하던 공포영화 기믹과 장의사로 일할 때의 노하우를 살려

켈러웨이에게 Kane the Undertaker(장의사 케인)이라는 링네임을 주었다.

(켈러웨이는 장의사 기믹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했지만 회사에서 시키는 건 군소리 없이 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링네임에서 케인을 빼버리고(7년 후, 글렌 제이콥스에게 그 링네임이 주어진다)

언더테이커는 본격적으로 WWF에 데뷔했다.

나머지는 다들 아는 그대로이다. 언더테이커는 역사를 새로 썼다.

언더테이커가 원래 대인배이긴 하지만 그의 성공의 비결을 하나만 꼽으라 하면
perseverance(인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찐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내의 열매는 달다. 

 

 

 

출처: 언더테이커 찐따 시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