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차세계대전 말기 1944년.
전황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매우 불리했으며
연합군은 이태리 본토 상륙을 앞두고 있었다.
프랑스는 비록 독일에게 패망하여 본토를 잃긴 했으나
해외 식민지에 아직 전투병력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독일과 이태리에 대해 강한 분노를 품고 있었으며
이태리 원정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당시 프랑스군은 주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정규군과 모로코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이태리 원정을 총괄하고 있던 프랑스군의
알폰소 주앙(Alphonse Juin) 장군은 '구미에(Goumier)' 부대도 데려간다.
구미에,
정식 명칭은 레 구미에 마로켄(Les Goumiers Marocains).
모로코인 비정규군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프랑스군은 모로코인으로 구성된 정규군도 운용했지만
동시에 보급, 정찰 등의 전투 이외의 업무에 투입되는 비정규군도 운용했다.
모로코인 정규군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라면,
프랑스군에게 적용되는 군율을 그대로 따르는 정규군과 달리
구미에는 군율이 느슨했다는 점이었다.
주앙 장군이 이태리군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전선에
(군율이 느슨하면 쉽게 후퇴하기 마련이고 군의 사기에 도움이 되지 않음)
비정규군을 데려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태리군과 독일군은 험준한 산악 지대를 이용하여 끈질기게 저항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로마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
몬테카시노 전투(Battle of Monte Cassino)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미군을 도와 이태리 원정에 참가하던 프랑스군은 구미에 부대를 내보냈다.
험준한 모로코의 산악지대에서 살면서 산에 익숙했던 굼(Goum=구미에 부대원)들은
절벽이나 다름없는 지형을 타고 올라가 이태리군의 후방을 들이쳤고
합동 공격을 퍼부은 연합군은 로마로가는 최대의 난관
몬테카지노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나중에 "로마의 해방자" 칭호를 듣게 되는 미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도
모로코인들의 활약을 크게 칭찬했다.
하지만 주앙 장군이 모로코인들을 데려온 것은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주앙 장군 뿐만 아니라 프랑스 장군이라면
현지인들에 의한 저항이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나폴레옹 시절, 민간인들의 저항으로 큰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 떄문이다.
'게릴라'라는 단어부터가 나폴레옹에 맞서 저항하던
스페인 민중을 지칭하던 '작은 전사들'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앙 장군은 이태리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서는 철저한 초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굼들을 부르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지금부터 50시간동안 제군들은 제군들이 발견하는
모든 이태리인들의 주인이다.
제군들이 무슨 짓을 하든 아무도 제군들을 벌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제군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모로코인 정규군은 엄한 군율을 경험했기 때문에 민간인을 공격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굼들은 모로코에서 강력한 부족주의에 익숙했고
남자가 살생여탈권을 쥐는 문화에도 익숙했다.
부족 내에서 여자들은 강간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체험으로 알고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인 장군이 보장까지 했다.
그리고 이태리인들에게는 지옥이 열린다.
저항하는 자들은 사살했지만 주로 강간이 주를 이루었다.
굼들의 활약을 칭찬했던 미군은 진격이 바쁘다고 이미 로마를 향해 떠난 후였고,
후방에는 굼들과 이태리 민간인들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50시간 동안 발생한 강간 피해자는 무려 7천명에 달했다. ㄷㄷㄷ
나중에 미군이 이 사실을 알고 항의하자
프랑스군은 뒷수습을 하는 척하면서 모로코인 여성들로 구성된 위안부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굼들에게는 아무 재판도 없이 그냥 넘어갔다.
이태리인들의 저항을 뿌리뽑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에 만족한 프랑스군은
다른 점령지역에서도 비슷한 집단강간을 벌였다.
무슬림 비정규군의 강간 놀이가 이태리인들에게 준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무솔리니 정권의 멸망 이후 저항다운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게다가 모로코인들의 무차별적인 강간에 충격을 받은 이태리인들은
마로키나테(marocchinat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직역하면 '모로코인들이 하는 짓'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강간을 의미하며 지금도 이태리에서 쓰이고 있다.
이태리의 산 카스트로 델 볼시의 전망대에는
굼들에게 강간당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Mamma Ciociara'라는 기념물이 있다.
한국 같이 법이 솜방망이인 나라에서
난민이라는 언더도그마가 잘 먹힌다는 사실을 아는 무슬림들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가?
분명한 사실은 중졸은 마로키나테 같은 거 모른다.
그리고 한국인 여성이 성범죄를 입어도
정우성은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에 내 부랄 한쪽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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