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인조 1) 4월 13일 흐림.
성상(임금을 높이 부르는 말, 인조)께서 <논어>를 진강한 뒤
변방의 군량미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강연 내용]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오늘 경들과 주강(1)을 행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과인이 <논어(論語)>의 대목을 한 번 읽겠다."
자왈군자부중즉불위(子曰君子不重則不威)(2) 이과물탄개종언(以過勿憚改終焉)(3) (중략)"
1. 조선 시대 왕이 관료들과 함께 경서의 내용이나 정치의 득실에 대해 토론한 것
2.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몸가짐이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을 것이니
배워도 견고하지 못할 것이다.
3. 허물이 있으면 고쳐야 할 것이다.
시강관(4) 윤지경이 아뢰기를,
"임금이 중후하지 않으면 밖으로 드러난 것은 위엄이 없고
마음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은 견고하지 않으니
반드시 (임금은) 안과 밖을 모두 닦아야 이러한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4. 시강관 : 조선 시대 경연관, 정4품 벼슬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임금이 과실을 숨기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가?"
시강관 윤지경이 아뢰기를,
"사람이 만약 허물을 숨기면 온갖 악이 모두 이로부터 나올 것이니
임금에게 있어서는 더욱 경계해야 될 일입니다.
위엄과 세력이 막강하여 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임금의 허물을 직언할 수 있겠습니까?
성상 전하께서는 유념하셔야 합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임금이 간언을 듣는 것도 참으로 어렵지만
신하가 간언을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시독관(5) 조희일이 아뢰기를,
"임금이 자만하여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색이 있어
천리 밖에서 사람을 거부하는 것 또한 군주에게 달려 있습니다."
5. 조선 시대 경연의 정5품 관직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이른바 군신(임금과 신하) 상하가 서로 질책해야 할 것이다.
임금은 반드시 과실을 듣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신하는 반드시 그른 것을 바로잡는 것을 임무로 여긴다면
각각 그 아름다움을 극진히 하게 될 것이다."
조희일이 아뢰기를,
"성상 전하의 교훈이 이와 같으시니 너무도 다행스럽습니다.
중국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황제는 신하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니
이로써 역대 중국의 흥망성쇠를 상고할 수 있습니다."
참찬관(6) 한여직이 아뢰기를,
"모름지기 임금은 허물을 고칠 때에는
작은 허물이라 해서 고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신하를 대할 때에는 신하의 작은 허물은 허용해야 될 것입니다."
6. 조선 시대 경연의 정3품 관직
특진관(7) 이괄(8)이 아뢰기를,
"신(臣) 이괄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병사들을 지금 훈련해야 하는데,
장차 군량이 너무도 걱정됩니다.
지난번 호조 참판을 보았더니,
충청도에서 서쪽 변방(9)으로 운송한 쌀이 4만여 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속히 오랑캐의 군세가 사나워지기 전에
군량미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을 잘 택해야 될 것입니다."
7. 조선 시대 경연에 참여하여 임금의 고문에 응하던 관원
8. 이괄은 무장 출신이고 나중에 부원수의 직책을 맡아 변방을 관리하게 되나
인조 1년에는 특진관으로 참여하여 인조와 군사 토론을 즐겨하였다.
9. 조선 시대에 평안도 지역을 주로 '서쪽 변방'이나 '관서', '서로(西路)'라 지칭하였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이괄의 말이 참으로 좋다.
오랫동안 묘당(10)과 논의하고자 하였는데
일이 많아 미처 겨를이 없었다."
10. 묘당 : 비변사(조선 시대 국방 회의 기구)
이괄이 아뢰기를,
"강화(江華)에 저축학 곡식 또한 많은데
지금 강화 근방에 배가 20여 척 있으니
이러한 배로 속히 군량미를 운송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군량미가 참으로 걱정되었는데 만약 배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1척에 얼마나 실을 수 있는가?"
이괄이 아뢰기를,
"큰 배는 1척에 거의 4~5백 석을 실을 수 있습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20척이면 거의 1만 석에 달할 것이다."
이괄이 아뢰기를,
"군사 역시 농한기에 다시 정밀히 뽑아서 7월 이후부터 훈련하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다만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던 뒤에 겨우 소생할 희망을 갖게 되었으니
몇 개월 동안에는 필시 나라를 위해 힘든 일에 종사할 마음이 없을 것이다.
지금 만약 군사를 뽑으면 혹 해산하게 될 폐단이 있을까 두렵다."
이괄이 아뢰기를,
"조만간 저 오랑캐와 한 번 싸워야 할 것이니,
우리 조선의 태세는 늘 내일 출전하는 것같이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랑캐가 우리나라 국경에 출몰한다면
어찌 백성이 곤궁하다고 핑계 대고 감히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저 오랑캐의 철기가 매우 사나워서 대적할 수 없으니
화약은 필시 많이 저축해 놓아야 할 것이다."
이괄이 아뢰기를,
"감히 신(臣)들이 역괴(광해)의 혼단한 세상에서
오늘날 지혜로우신 성상 전하를 만나
새로운 시대를 살게 되었으니
뼈와 골수가 끊어지고 사지가 절단되는 한
성상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입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오랑캐의 기세는 어떠한고?"
도원수(11) 장만이 아뢰기를,
"사나운 새가 잠시 날개를 접은 형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천조(명나라)는 임진년에 우리가 왜적을 만나 혼이 달아난 형국과 같습니다.
오늘의 사세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믿을 구석도 없고
천조(명나라)만을 의지할 수 없으니
스스로 강병책을 강구해서 계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11. 조선 시대 전시에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관직(군무를 통괄하던 원수)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천조(명나라)만 믿어서는 필시 곤경에 처할 것이다.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여러 계책을 내놓고자 한다.
고구려가 차지한 땅이 중국보다 넓었는가?"
홍서봉이 아뢰기를,
"땅이 넓었던 것 같습니다."
남이공이 아뢰기를,
"안시성 - 기록 소실 -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양만춘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 기록 소실 -"
홍서봉이 아뢰기를,
"고구려가 요동 지방을 소유하여 삼국(三國) 가운데 - 3, 4자 원문 빠짐 -
수나라와 당나라가 감히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땅은 평원이 광활하여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지형이 이와 같기 때문에 씩씩하고 호방한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고구려의 역사에서 연개소문이라고 일컫는 자는
비록 임금을 시해한 도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수가 없는 일대 호걸입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연개소문의 재주는 위나라 조조에 뒤지지 않을 듯 하다.
지금 오랑캐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모두 (고구려의) 땅인가?"
홍서봉이 아뢰기를,
"모두 고구려가 소유했던 땅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헌이 중국만 못하여 안시성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고
안시성 성주가 누구인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습니다.
일국(고구려)의 충성스럽고 호걸스러운 영웅의 이름이 민멸되어 전하지 않으니
그 통탄스러움을 - 뒷부분 기록 소실 -"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고구려 시대에는 하나의 성 안에 들어간 병사가 10만이고
쌓아 둔 양식이 15만 석이라고 하니
참으로 이 말과 같다면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
영의정(12) 이원익(13)이 아뢰기를,
"이 말이 어찌 거짓이겠습니까?"
12. 조선 시대 의정부와 행정 기구의 최고 관직, 정1품
13. 선조 때 충신으로서 임진왜란 극복 과정에 크게 기여하였고 대동법 확대에도 기여하였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에 출병했을 때
고구려가 사방 40리에 걸쳐 당나라군과 결전하였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이원익이 아뢰기를,
"큰 나라에는 대들 수 없는 법인데
고구려는 오래 전부터 병사를 훈련시켰기 때문에
항거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고구려의 영토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였는가?"
이원익이 아뢰기를,
"금석산(金石山)을 넘고 요하(遼河)를 지났을 뿐입니다."
성상(인조)께서 놀라며 이르기를,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는 광활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우리나라는 안일에 빠져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는 것도 아닌데
군사와 양식을 확보할 길이 없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성상 전하께서는 반정(인조 반정)으로 역괴 광해를 몰아내고
강산의 윤리를 회복하셨습니다.
신이 비록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나
살아있는 한 성상을 보필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까 합니다.
제가 지금 정신이 또렷하지 못해
앞으로도 성상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우려가 됩니다."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경은 너무 늙었지만 정신은 또렷하오.
차후로는 서로 만나 보기가 힘들겠지만
경의 기력이 부지할 수 있는 한
과인으로 하여금 만나 볼 수 있게 해 주겠는가?"
이원익이 눈물을 흘리며 아뢰기를,
"노신과 같이 정신이 또렷하지 못한 자를 이렇게 중임을 맡겨주시니
오직 감읍할 따름입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옥체를 보전하소서."
성상(인조)께서 이르기를,
"경이나 몸조리 잘하시게.
경은 잘 가시오.
대신들 또한 잘 가시오."
이원익이 절하고 물러났고
여러 신하들 또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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