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진열장/여러정보들 집합소

일본 에도시대의 슈인선 무역에 대해서...

by JiNan's 2019. 2. 23.
반응형

 


( 유럽의 갤리선을 본따서 만든 일본의 슈인선들은 원양 항해가 가능했는데 , 서양식배와 중국식 배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다.

대항해 시대 당시 서양의 갤리온선들 처럼 대포를 장착해서 무장을 할수 있었다)


1.슈인센이란 무엇인가?


저 위에 보이는 서양식 갤리선처럼 생긴것들이 모두 슈인선 또는 슈인센이다.

슈인센이라는게 사실 처음 생겨난건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때 부터다.

도요토미 이전의 일본은 각각의 성주들이 자기 세력내에서 

자신들이 알아서 동남아 중국 유럽국가들과 사적인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걸 본인이 관리하면서 각각의 지방세력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는 일본의 상선들에게 슈인조라는

일종의 해외무역 허가증을 발급하게 된다. 

이 허가증이 있는 상선들만 해외에서 무역이 가능했어

특정 상인들에게만 해외무역을 하게해주는 일종의 특권이였지

이 슈인조라는 면허를 받은 선박들을 슈인선(배)이라고 불렀는데

슈인선에게 슈인조를 발급해주는 이런 시스템이 완전히 제도로서 정착한건 

에도시대의 도큐가와 이에야스에 의해서였다. 


에도시대인 1604~ 1635년까지

32년간 이 슈인조라는 면허를 발급받고 해외로 무역을 위해서 나간 배는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356척 이였다고한다.

그리고 슈인선을 타고서 동남아나 중국등지로 무역을 하러 떠난 

상선 탑승자들만 기록에 따르면 10만명이 넘었다고한다.

일본이 과거 자국으로 장사를 하러온 포루투갈이나 스페인의 배를 보고 

우리도 그들처럼 원양으로 나가서 항해를하고 장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저 동양과 서양의 갤리선이 융합된 배

수백에서 수천척이 에도시대에 일본 상단을 이끌고 해외로 나갔다.



(슈인조)


2. 슈인조란 무엇인가?


위에 저 사진의 도장이 찍힌 저게바로 

에도 막부에서 발행한 슈인조라는 상선허가증이다.

이 슈인조라는 면허증이 있어야 

동남아시아와 중국같은 외국으로 나가서 무역을 하는 상선을 운영할수 있었다.

 저 종이 왼쪽에 찍힌 빨간색 도장이 바로 막부의 인증



( 베트남에 무역을 하러 온 일본인들이 베트남 중부의 도시 호이안에 건설한 다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 에도시대  일본 슈인선의 무역루트와 도항처 및 아시아 각국에 있던 일본인 타운들, 

당시 스페인령 마닐라에는 일본인 마을과 중국인 마을이 마주보고 있었다)



(슈인선 무역으로 과거 태국에까지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자국 상단을 보호하기 위해 진출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는 태국영화 ' 무사 야마다')


3. 슈인선의 항로를 따라 건설된 일본인 타운들


위에서 언급했듯이 슈인선을 타고 해외로 나간 인원만 10만이 넘었는데 

그들이 주로 배를 타고 도착한 목적지는 도항처는 대만, 톤킨, 샴(타이), 캄보디아, 르손등 이였다고한다. 

또 슈인선이 빈번하게 입항하는 대만의 아비라, 필리핀의 마닐라, 산미구엘 (맥주유명) , 루손섬 (필리핀), 아유타야 ( 태국의 경주), 프놈펜 ( 캄보디아 수도),

호이안 ( 베트남의 경주)에는 적게는 수백에서 수천명이 머물수 있는 

일본인 타운이 건설되어 있었고 이런 마을들은 일본 막부의 간섭에서는 벗어나서 마치 자치제로 운영되었었다고 한다.  

이런 동남아시아와 아시아 곳곳의 일본인 마을들은 해외상품의 구매나 매매의 거점지였고 일본 해외무역의 일선이였다.



( 조선은 조운선이라는 배가 있었지만 외국과의 무역에 배를 이용하지 못하고 주로 한양으로 가는 세금과 쌀을 운반하는데에만 쓰였다)


 


4. 슈인선 무역에 종사했던 사람들


슈인선 무역 초기에는 현 일본의 큐슈지방인 서쪽지방의 세력가들인 다이묘들이나 

막부의 대리인들이 많이 참여하였고 중국인이나 유럽인들중 일본에 체류하던

상인들이 주로 개입을 많이 하였다.

명나라 휘주 출신의 밀수업자였던 왕직도 일본에 체류하면서 슈인선 무역을 해서 큰 부자가 되었던 인물이다.

왕직은 당시 화약의 연료로 쓰였던 중국산 초석을 일본과 밀무역해서 큰 부를 손에 거머쥔 인물이다.

그러나 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참여했던 슈인선 무역은

에도막부가 해마다 규제를 강화하면서 서쪽지방의 유력 다이묘들은 점점 배제가 되고

중앙막부의 비호를 받는 호상들의 차지가 되어버리지

막부의 입장에서야 지방세력이 자본을 축적하는게 두려웠겠지


슈인선 무역의 대표적인 무역가들

①다이묘 :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 마쓰라 시게노부(松浦鎮信),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

②상인 : 스에쓰구 헤이조(末次平蔵 - 나가사키), 스에요시 마고자에몬(末吉孫左衛門 - 오사카),

스미노쿠라 료우이(角倉了以 - 쿄토), 자야 시로지로(茶屋四郎次郎 - 쿄토)




( 슈인선을 타고 온 포루투갈인에 의해 일본에 전수된 카스테라는 오늘날 나가사키의 명물이다)


5. 슈인선 무역의 매매물품들 


①수입품 : 생사, 견직물, 면직물, 모직물을 중심으로 한 중국 상품, 상어 가죽, 

상아, 후추, 물소의 뿔, 약 등의 동남아시아 상품, 설탕, 피혁, 납, 향료, 약종


②수출품 : 은, 동, 철, 유황등의 광산물, 도검, 공예품, 각종 도구류



(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원양 항해나 바다를 통한 무역의 개념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나라였던 일본을 가는것 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로 여기고

두려워 하여 일본에 통신사로 가기전 아내에게 유서를 써서 줬다고 한다)




일본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에 이루어진 슈인선 무역으로 아시아 전역에 걸치는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다.

이 무역활동을 통해서 동남아시아와 중국뿐 아니라 포루투갈 스페인등 다양한 서구 세력들과도 교류하였고

중국 바라기를 해야지만 살수 있었던 조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수 있었다. 

이 차이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에게 영향을 미치는 면이 있다는걸 부정할수 없다고 본다.



출처: 역사) 에도시대 일본의 슈인선 무역에 대해서 arabozi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