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북에서는 철저한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다’는 논리와 주장이 우리 사회에 정설처럼 만연해 있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세력을 정권의 지지 기반으로 활용했지만, 김일성 정권은 친일파를 철저히 청산했기에 민족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일부 학자들은 ‘북한에서는 통치구조의 개편과 토지개혁 및 산업국유화라는 경제개혁을 통해 친일파 청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설파한다. 그 대표적 인사가 강정구 교수다.
“북한의 친일청산은 일본의 패망이 발표되는 해방공간 시점인 45년 8월부터 조선민중의 자연발생적 힘에 의해 곧바로 시작되어 46년 거의 완벽할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이 결과 북한에서는 친일이라는 과거청산 논쟁이 아예 발붙일 틈이 없게 되었다. 남한 역시 해방과 동시에 친일청산의 민중적 욕구가 분출되어 자연발생적인 청산작업이 시작되었으나 미 점령군의 개입으로 즉각 중단되고 말았다.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인 49년도에서야 늑장부린 친일청산이 시작되다가 이번에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해방 60년 환갑이 된 시점에서도 친일청산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구체적 근거를 토대로 하지 않은 선전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 양성기관인 김형직사범대 출신으로 1999년 월남한 탈북 작가 최진이는 북한의 친일청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해방이후 전 국민의 숙원인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 내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가로서의 승패가 달린 관건적 안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떠오르던 많은 정치인사들 중 누구보다 정치 감각이 탁월했던 김일성은 이를 자기 권력기반 형성에 완벽하게 이용하였다. 그 대표적 방법이 인구 70 %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사회에서 일제시기 땅마지기나 가지고 있던 자들을 우선 처벌하는 일이었다. 3천 평 이상 소유한 자는 지주, 천오백 평부터는 부농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땅을 무상 몰수하는 것과 동시에 본인들은 전부 타고장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의 개인적 사정을 알 바 없는 낯선 고장 사람들은 국가가 ‘친일주구’ ‘역적’이란 딱지를 붙여놓은 추방자들을 심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 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은 피비린내를 맡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군중 히스테리의 제물로 고스란히 바쳐졌다. 군중의 열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김일성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급상승하였다. 김일성은 북한인들을 ‘적대계급’ 증오사상으로 자극시킬 때 그것이 가져올 반사작용의 효과를 알았다.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분배해 준 자신에 대한 숭배열이었다. 김일성이 무상 분배한 땅은 ‘국가’의 이름하에 곧 압수될 정치 미끼일 뿐이었다. 농민들은 얼마안가 나라에 땅을 몰수당하고 ‘사회주의’의 미명하에 지주의 머슴에서 수령의 노예로 신분이동을 하였다.”
북한의 철저한 친일청산이란 소비에트(soviet)화를 합리화시키고 나아가서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로 재편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가혹한 전체주의 공산혁명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남한) 사회에서는 아무런 확인도 없이 ‘북에서는 철저한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계 인사나 학자들조차도 ‘북한에서 친일청산이 철저히 이루어진 것은 사실 아니냐’는 믿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북한체제를 미화하는 선전논리를 비판 없이 수용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북한의 친일청산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을 통해 규명하지 않고, 북한의 정권기관이 편찬한 몇 가지 체제선전저작물에 근거해 북한 당국의 논리를 반복한 결과이다. 이 글은 북한의 친일청산 실태에 관한 기존 연구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힘으로써 ‘북한의 철저한 친일청산’이란 신화를 해체하기 위한 글이다. 나아가서 공산주의와의 대결 상황에서 한국(남한)이 수행했던 친일청산이 아쉬운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보다는 오히려 훨씬 더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모습이었음도 밝히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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