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南侵(남침)전쟁의 世界史的(세계사적) 의미
6·25 남침전쟁은 외국에선 Korean War, 즉 한국전쟁으로 불리는데 세계사적 영향력에선 제1차, 제2차 대전과 함께 20세기의 3大 전쟁으로 평가된다. 월남전에서 더 많은 미군이 戰死(전사)하였지만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점에서는 한국전이 더 크다.
1. 김일성의 남침에 맞서는 과정에서 한국은 공산주의자들을 일소하고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군대와 기업이 새로운 역사 창조의 主體(주체)세력으로 등장, 민족사의 최대 강국을 만들었다.
2. 대만이 멸망의 문턱에서 살았다. 미국은 한국전이 나자말자 그 전엔 포기하였던 대만의 보호를 선언하고 7함대를 대만 해협에 파견, 중국의 상륙작전을 미리 저지하였다.
3. 일본의 경제부흥이 한국전쟁 特需(특수)로 본격화되었다.
4. 독일의 재무장이 이뤄졌다.
5. 느슨하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군사동맹체제로 강화되어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는 핵심 기구가 된다. 유엔도 침략을 저지하는 유엔군을 파견함으로써 국제평화 유지 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6. 미국의 거대한 경제력이 군비증강을 시작한다. 국방예산이 한국전쟁 기간 중 네 배로 늘었다. 美蘇(미소) 군비경쟁의 결말은 소련 경제의 붕괴와 이에 따른 공산체제의 종식이었다.
7. 중국이 유엔에서 침략자로 규정되어 그 후 20년간 고립되었다. 이 기간에 문화대혁명과 대약진 운동이란 2大 비극이 펼쳐져 수천만 명이 죽었다. 반면 미군과 맞서 대등하게 싸웠다는 게 신생 중국의 권위를 높였다.
8. 북한정권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 끼여 더욱 폐쇄적인 체제로 변질되었고, 김일성 우상화와 핵무장의 길을 치달았다.
9. 한국전은 자유진영을 각성, 奮起(분기)시켜 동서 冷戰(냉전)에서 공산권의 패배를 예약하였다. 전쟁을 시작한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은 패배자, 버티어낸 트루먼, 李承晩(이승만)은 勝者(승자)가 되었다.
10. 한반도에선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세계사적 관점에선 자유진영이 이긴 전쟁이지만 한반도에선 승부가 나지 않았다. 전반전은 1-1의 스코어, 지금은 하프 타임이다. 후반전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장과 남한의 核前(핵전) 무장해제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핵전쟁의 위험이 큰 지역이 되어버렸다. 6·25 남침전쟁은 한국이 핵무장한 북한정권을 무너뜨리고 통일하여 전쟁범죄자들과 민족반역자들을 斷罪(단죄)하든지, 북한정권이 핵무기로 韓美(한미)동맹을 無力化(무력화)시키고 남한을 赤化(적화), 애국자들을 일소해야 끝날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함으로써 세 번째로 國家(국가)존망의 위기를 불렀다. 북한군의 남침 직후, 중공군의 개입 직후에는 트루먼의 미국이 결단하여 한국을 구출했지만 세 번째 위기는 우리 손으로 극복해야 산다.
출처: 조갑제 닷컴 (이 글을 프린트하여 젊은이들에게 나눠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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