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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 옥쇄 전략 결호 작전에 대해 알아보자

by JiNan's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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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사이판이 털리면서 사실상 일본의 패배는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필리핀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상 절대 깨지지 않을 최대규모의 해전이 벌어지는데 그게 레이테만해전인데
일본 연합 함대는 사실상 몰살당해버리며 끝나고 1945년초에는 일본군  50만명이 넘게 있던 필리핀까지 맥아더에게 함락당하게 된다.
1945년 3월에는 이오지마를 함락당하며 그동안은 큐슈까지만 가능했던 일본 폭격이 일본 전체로 확대되어버리고
도쿄는 대규모 폭격을 당하며  50%에 달하는 시가지가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 미군 상룩은 확정적이고 일본은 당시 인구 7,000만을 전부 동원한 총옥쇄 작전을 시행해 우선 조선 반도를 지키기 위해 결7호 작전을 승인한다.

무려 15만명의 일본군이 제주도로 가는데 이오지마전투의 전략으로 해안가를 비우고 산지에서 집요하게 괴롭힐 작정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은 그나마 남아있던 관동군 최정예 사단들을 전부 빼내서 제주도에 재배치 시켜버린다.
이때 제주도로 파견온 관동군들로 인해 만주에 있던 관동군은 31개 사단중 25개 사단을 재구성할 정도로 망해버린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목숨 걸고 하려한 결 3~6호 작전을 알아보자.

큐슈에서 도쿄까지 이어지는 라인에 일본군 500만을 배치하고, 큐슈에만 무려 300만의 일본군을 배치한다.
큐슈는 사실 상륙해서 점령하기 극도로 어려운 땅이다. 

몽골도 결국 패배했지..
그러나 300만의 일본군은 대부분 막 징집된 인원들이고 탱크도 기름 없어서 못 굴리던 상황이었다.
전투기도 소수만 남아서 분전중이었고 제 343 해군항공대는 마지막 선전을 하면서 미공군에게 꽤나 피해를 강요했다.

아무튼 일본군 수뇌부인 대본영에서는 2000만 일본 성인 남성 전체를 자살 공격으로 미군을 저지하자는 방안도 나올 정도였다.
2,000만이면 일본 15~65세 남성  인구의 70%가 넘어가는 수치인데,
그 외에도 큐슈에서 혼슈로 가는 길목에도 100만을 배치하면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군의 상황은 너무 열악해서 도저히 제대로된 싸움이 될리가 없었다.
무기가 너무 없어서 임진왜란때 쓰던 조총도 박물관에서 뜯어오고 학교나 건물 쇠창살까지 뜯어서 무장할 정도였다. 

탱크는 기름 없어서 해안에 박아두고 대포처럼 쓰고, 군함은 구레공습으로 전부 사라져서 그것도 못하고...

일본으로서는 더  아쉬운게 일본본토기 미군 잠수함과 기뢰에 의해 포위되는 바람에 중국, 만주 동남아, 조선에 있는 병력들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결호작전 앞둔 일본의 영토가 저랬으니 이에 대응하는 미군은 100만에 달하는 역대급 상륙작전을 기획하고 있었고 10발의 원자폭탄을 일본에 퍼붓고 상륙하는 작전을 계획해다.

당시 홋카이도 도후쿠 지역은 경비병력 수준만 있던 상황인지라 만약 소련군이 상륙했다면 순식간에 홋카이도와 도후쿠 지역은 소련군이 먹었을거다. 

미군은 처절하게 싸우며 하나하나 점령해갈동안 아마 원폭 2방으로 일본이 항복 안했다면
조선반도 전체가 소련군 손아귀에 들어갔을거다.

확실한건 전쟁이 길어질수록 일본과 미국은 불리해지고 소련과 중국에게는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을거다.

 

 

출처: 일본의 총옥쇄 전략 결호작전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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