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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흑인은 다른 인종보다 가난한가??

by JiNan's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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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사는 흑인 작가이자 방송인 래리 엘더

래리 엘더는 흑인민권운동가 퀘이시 음푸메와 인터뷰할 때, 이렇게 질문했었다.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흑인 편모가정(아버지가 없는 가정) 중 어느 쪽이 흑인들에게 더 큰 위협인가요?"

음푸메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흑인 가정의 위기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편모 슬하에서 자란 흑인이 아버지 있는 가정에서 자란 흑인에 비해 가난 속에 살거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5배나 높고

아버지 없이 자란 흑인은 그렇지 않은 흑인보다 학교를 자퇴할 확률이 9배나 높고

아버지 없이 자란 흑인들은 그렇지 않은 흑인들보다 전과자가 될 확률이 20배나 높다는 것이다. ㄷㄷㄷ

아동 교육에 대한 학술지에서도 가정의 수입에 상관없이 아버지가 없는 가정의 자녀들은 전과자가 될 확률이 급상승한다고 했다.
즉, 흙수저든 금수저든 상관없이 아버지의 존재는 자녀의 인격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

경제학자 월터 윌리엄스는 눈여겨봐야 할 연구를 발표했다.
1890년에서 1940년까지, 백인 아동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흑인 아동들이 부모와 같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가정 붕괴는 백인들의 문제였지 흑인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같이 그 기간에 성장한 흑인 인재들은 민권 운동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흑인과 백인(그리고 다른 인종들)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지금의 과격주의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인종간 가정의 붕괴는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흑인의 미혼모, 결손가정 확률은 백인을 앞질렀고 현재는 그 어떤 인종보다도 흑인의 가정 붕괴가 심각하다.

흑인 아버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래리 엘더는 단지 흑인 남성들의 책임감 운운이 아니라 더 큰 원인으로 눈을 돌린다.
바로 미국 정부의 복지 제도이다.
"만일 정부가 나쁜 습관에 원조를 한다면 나쁜 결과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흑인들의 빈곤률은 낮아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린든 존슨 대통령이 '가난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가장 극빈한 가정이 미혼모 가정이기도 했고 또 당시 사회적으로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의 영향도 있어서
미 정부의 원조는 미혼모 가정에 집중되었다.
미혼모에 대한 원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빈곤률은 전혀 내려가지 않는 상태이다. 

복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로널드 레이건은 "복지의 목적은 복지를 받을 필요를 없애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페미들이 주장하는대로 미혼모에 경제지원을 했더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했더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프리섹스를 미화하고 가정의 중요성을 절하해왔다.
그렇게 양산된 미혼모들에게 정부가 돈을 퍼주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더구나 붕괴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범죄에 빠지고
전과자들의 가정은 더더욱 쉽게 붕괴되어 전과자들의 자녀들을 위기로 내몬다.
가정이라는 컨셉 자체를 증오하는 페미들이 끼친 해악은 이렇게도 큰 것이다.

래리 엘더의 통렬한 비판은 계속된다...
"우리의 복지 시스템 때문에 여성들은 정부하고 결혼하는 셈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학습된 무능(혹은 무기력)"이라고 부른다.
복지롤 해줬더니 더 일도 안하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더라 이거다.

1985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기사에서 (당시는 레이건 시절이다)

LA타임스는 "가난한 여성들이 복지를 더 받으려고 애를 낳으려고 하는가"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재미있는 결과가 있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혹은 부유한 가정 출신 여성들(즉, 페미 성향이 강한 여자들)은 대부분 '아니다'라고 답한 반면,
극빈층에서는 68%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다.
실은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제일 근본적인 문제이다. 자기들만의 서클에 갇혀서 실제 여성들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전설적인 래퍼 2PAC(투팍)도 말했다.
"만일 내가 아버지를 가졌더라면 나는 똑바로 살았을 거야. 좀더 스스로에 자신감을 가졌을 거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만큼 아들들을 휘어잡지 못해... 아들에게 사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래리 엘더 자신도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책 Dear Father, Dear Son에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기렸다.

래리의 아버지 랜돌프 엘더씨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에 무려 2개의 직장을 뛰었다. 학력이 짧았기 때문에 경비원과 수위로 뛰었다.
주말에는 부유한 가족들의 파티에 참석하여 요리사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배움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야간학교에서 GED(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해당함)를 취득했다.
그리고 꾸준히 저축하고 은행 신용을 쌓아온 결과. 그는 식당을 창업하여 30년간 운영했다.

대학에도 가보지 못했고, 늘 가난과 싸우며 살았지만 랜돌프씨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력은 이긴단다. 네가 노력하면 삶을 바꿀 수 있어. 결과를 어찌해볼 수는 없지만 노력은 100% 통제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말해라. 결과를 바꾸기 위해 난 무얼 더 할 수 있었을까?라고."

래리 엘더의 메세지는 명료하다.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말하기 전에 흑인에게 아버지가 중요하다(Black Fathers Matter).
가정이 붕괴되면 빈곤률과 범죄율은 올라가고 이것은 정부 복지로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
거의 50년간 미국 페미들은 자기들의 알량한 이론이 가져온 가정 붕괴를 남의 돈(복지)로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의 복지는 여전히 흑인 부부가 아니라 미혼모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래리 엘더의 지적은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페미들은 가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력을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모순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페미들은 여자가 남자와 정정당당히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를 병적으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자가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열등하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경쟁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페미들이 그토록 정치권력을 탐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버린 여자들에게 정부 예산을 주어 마치 남자 없이도, 가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특히 흑인들의 비극에서 보았듯이 반가정은 곧 반사회이다.
따라서 반가정주의자들인 페미니스트들은 곧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볼 수 있다.


출처: [PragerU] 흑인은 왜 다른 인종보다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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