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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읽고가는 임진왜란 이야기 다섯가지...

by JiNan's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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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임지왜간 이야기...
다섯가지 한번 소개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한번 훑어보세요.

<목차>

1. 조선의 흔한 편곤소드 마스터
2. 조선에 항복한 왜군,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 토벌에 동원되다
3. 조선군의 왜군 귀 베기(2천여 개)
4. 조선 황제
5. (번외) 조선 수군 vs 서양 갤리선

동래부순절도

1. 조선의 흔한 편곤소드 마스터

위 무기는 바로 명나라에서 도입한 '편곤(철회편)'이라는 무기인데,
임진왜란 때 이 편곤으로 왜군 대갈통을 노짱 머리 박살내듯이
두부외상시킨 편곤 마스터가 있었어.

1593년, 경기도 고양에 '명회'라고 하는 농부가 살았어.
그런데 전쟁 중에 명회 아버지가 왜군에게 살해당해.
그래서 죽은 아버지 원수 갚는다고 편곤을 가지고 왜군 사냥에 나서.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조선 마상 편곤 기병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다가 왜군이 나타나면 편곤 가지고 뚝배기 깨부수고 다녔지.
그렇게 혼자서 죽인 왜적이 '조선왕조실록'에서 400여 명이라고 나오는데,
과장이 있다고 치더라도 어쨌든 혼자서 많이 쳐죽이고 다닌게 분명해보여.

농업 국가 조선의 도리깨

뭐 우리 다 알고 있다시피 조선은 농업 국가잖아?
그래서 조선인은 도리깨나 이런걸 많이 사용했어.
근데 편곤도 딱 도리깨 모양이어서 조선처럼 농경 민족에게 맞는 무기이기도 했고,
그 위력이 절륜해서 한방 맞으면 바로 노짱 따라 갈 정도였지.

도리깨 : 곡식의 이삭을 두드려서 알갱이를 털 때 쓰는 농기구

​그래서 임진왜란 동안에 편곤이 도입되었고,
농사짓던 조선인들은 호신용으로 이걸 많이 사용했어.

"야, 우리나라는 활을 잘 쏘잖아?

창이나 칼로 싸우는 백병전에는 약하다구.

그런데 편곤이 배우기도 쉽고 농사짓는 우리한테 잘 맞다며?

편곤 적극적으로 쓰셈."

선조는 아예 편곤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했고,

임진왜란 이후에도 많이 사용됐어.

조선 시대 편곤 기병

1만 3천여 명의 북방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던 부원수 이괄의 군대에는
700여 명의 편곤 기병이 있었는데,
황주 전투와 마탄 전투에서 편곤 기병의 돌격에 관군의 진형이 와해되기도 할 정도였어.

"편곤 때문에 우리 관군이 당해내기 힘들었음 ㅠ"

이후에도 하멜표류기에서 하멜이 궁궐을 지키는 조선군이
편곤을 사용한다는 기사를 남길 정도로
조선군은 적극적으로 사용했나봐.
.
.
.

2. 조선에 항복한 왜군,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 토벌에 동원되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에 항복했던 왜군의 숫자가 늘어났는데,
이들을 보통 '항왜(투항한 왜인)'라고 불려.

선조는 항왜를 통해 조선군에게 검 쓰는 법과 조총술, 염초 제작법을 전수하게끔 해.
능력과 기술이 있는 항왜들은 관직을 받았지.

세종 대왕이 개척한 함경도 육진(六鎭 : 6개의 요새)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1594년 무렵,
왠 난데없이 북방에서 긴급 소식이 전해지는거 아니노?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조선의 정세를 이용해서,
조선에 복종하고 있었던 6진의 여진족들이 반란을 일으킨거야.
조선은 빡쳐서 토벌을 실시했지.

임진왜란 때 북관 대첩의 신화를 쓴, 조선의 최정예 군인이 주둔하고 있던 6진 군사는
함경북도 병마 절도사 정현룡에 의해 소집되었어.

북관 대첩 : 함경도에 침입한 가토 기요마사는 정문부가 이끈 6진의 조선군에 의해 대패함
가토 휘하 8,864명의 왜군이 함경도에서 사망

함경도 절도사 정현룡은 6진에 주둔한 1,325명의 군사와 25명의 항왜를 동원했지.
조선에 항복했더니 난데없이 여진족이랑 싸우러 가는 항왜. ㅠ
당시 반란을 일으킨 역수 오랑캐들은 험한 고지를 점거하고 조선군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그리고 밑에 있는 조선군을 향해 오랑캐 말로 욕을 퍼부었지.

반란을 일으킨 역수부 여진족

"풉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조선한테 복종 안함.
좆센도 이제 한물 감. ㅋㅋ
근데 저 쪽발이 새끼들은 뭐임? ㅋㅋ"

동계 작전을 수행하는 조선군 고증
조선군은 아래서 위에 있는 여진족을 쳐다보며 똑같이 욕했다고 하네.
"씨발 오랑캐 새끼들아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조선측 항왜
​(어리둥절)

조선군은 사방을 포위하며 돌진했으나 첫번째 공격에서 실패하고 말았어.
그런데 항왜들이 칼을 빼들며 귀신같이 돌진하여 길을 열었고,
이에 여진족이 주춤거리더니 뒤로 발을 빼기 시작했어.
그 틈을 타서 조선군이 일제히 공격해서 여진족을 밀어냈지.

여진족 토벌하는 조선군 고증

조선군이 언덕 벼랑까지 밀고 들어가자 여진족은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고,
이때 조선군이 참수한 여진족 목만 266개고, 700여 명의 여진족이 사망했어.

조선군 토벌군 사령관 정현룡

"항왜들 수고 많았다. ㅎ 고기랑 술 맘껏 먹고 마셔라.
그리고 노획한 소와 말도 상으로 줄게. ㅎ"

"ㅎㅎ 조센 장군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3. 조선군의 왜군 귀 베기(2천여 개)

개전 초기에 명군의 참전과 함께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했어.
그리고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던 조선군은 퇴각하는 왜군의 배후를 공격하기 시작했지.

흔히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저질렀던, '코무덤'과 '귀무덤' 이야기는 유명하지.
그런데 조선군도 왜군 상대로 코 베고 귀 베는 일이 있었어.

명나라에 보낸 조선 관군이 참획한 왜군 수급 보고서

조선군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퇴각하는 왜군을 기습했는데,
당시 조선군이 올린 보고서에 의하면,
참수한 왜군 목이 2,033개였고,
여기서 좌이(左耳 : 왼쪽 귀)를 잘라서 전공을 내세웠어.

조선군은 왜군 머리에서 1,989개의 왼쪽 귀를 잘랐다고 해.

그리고 코도 베고 소금에 절였다고 하니.

실 귀 자르는 관행은 그 이전에도 조선군에게 있었어.
여진족 토벌하고 참수한 머리에서 귀를 잘라 전공으로 삼았던거지.
소금에 절여서 명나라에 보내기도 할 정도였으니.

4. 조선 황제

이 탈짱깨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명나라 만력 황제야.
조선이 세웠던 '만동묘'의 주인공이기도 하지.

당시 명나라 내부에서는 조선 파병에 회의적이었는데,
이분은 그냥 적극적으로 조선을 도와주라고 했어.
이에 신하들이 놀라워했는데 왜?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0년 파업을 한 황제였어.
나랏일에 손을 떼고 파업하고 혼자 궁녀 끼고 술 마시고 놀았던 황제지.
심지어 신하들은 황제 얼굴을 잊을 정도로.

그랬던 그가 조선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했지.
심지어 나라를 위해 절대 내놓지 않았던 자신의 내탕금까지 풀면서 말이야.

웹툰에서 묘사한 조선 황제 만력제

수도 털리고 무기력하고 우울해진 선조에게 자신의 내탕금에서 은 2만 냥을 줬고,
또 국경에서 10만 석이 넘는 군량을 조선에 지속적으로 보급해줬어.

1592년과 1593년에는 조선에서 최악의 대기근이 터졌는데,
가뜩이나 남쪽 변경에 왜군이 득실거려서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했어.
이 소식을 접한 명나라 만력제는 무려 100만 석(9만 톤)의 곡식을 대대적으로 지원해줬어.

당시 전근대에서 100만 석의 곡식을 수송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것도 해상으로.

정작 명나라 제독 이여송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지.
자신들은 굶어 죽어서 조선 땅 약탈할 정도였고,
특히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군 말은 쫄쫄 굶어서 1만 5천 필이 뒤질 정도였어.

나중에 명나라 요청으로 광해군이 후금 막는다고 1만 3천여 명의 대군을 파견했는데,
여기서 9천여 명의 조선군이 전사해.

만력제는 좆나 미안해서 그런지.

"우리 대명(大明) 장수의 잘못된 지휘로
조선국 장졸들이 먼 이국 땅에서 전몰하였다.

짐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여 은 2만 냥을 보내니,
조선 국왕은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의 넋을 위로하라."

는 광해님께서 궁궐 짓는다고 은 2만 냥 뒷주머니로...

5. (번외) 조선 수군 vs 서양 갤리선

이건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이후의 이야기야.
우리 모두 알다시피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은 큰 신화를 썼어.
수많은 해전에서 여러 대형 화포로 왜선을 쳐부수며 해상 전술을 발달시켰지.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수군의 중요성이 강화되어 함선 건조가 추진되었어.

1604년 6월 4일, 오늘날 경남 통영시 일대에
조선 수군이 처음보는 선박 1척이 등장했어.

당시 포르투갈의 상인 조앙 멘드스 등 49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었지.
조선 수군은 즉각 남해 일대에 있던 통제영(조선 시대 해군 사령부)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경보를 울리고 대응하기 시작했어.

조선 수군

"내려 씨발놈들아."

판옥선에 탑승한 조선 수군은 이 대형 갤리선에 접근해서 배에 내려서 협조할 것을 요구했고,
대형 갤리선에 탑승하고 있었던 승조원은 일언지하에 거부했어.

사실 배 안에는 중국인과 일본인 선원들이 있었는데,
조선 수군은 중국인 선원들을 보자마자 대응하기가 좀 껄끄러워졌어.
자칫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일본인들은 조선 수군을 보자마자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날 준비를 할려고 했어.
결국은 일본인들이 중국인 승조원들을 살해하면서 일은 더 커지게 돼.

당시 조선 수군은 2월부터 7월까지 대규모 해상 기동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각 함대는 삼도수군통제사(종2품, 수군 총사령관)를 중심으로 기민하게 움직였어.

이런 상황에서 전라우수영에서 판옥선 15척, 전라좌수영에서 판옥선 5척,
충청수영에서 판옥선 10척이 나와서 해상 기동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지.

조선 수군은 판옥선 30척으로 갤리선 주변을 포위하며 항해 불능 상태로 만들었고,
즉각적으로 갤리선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어.
갤리선은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일려고 했지만,
워낙 조선 수군의 포위망이 굳건해서 이동하기 힘들었지.

조선 수군의 맹렬한 포격으로 갤리선의 선체 격벽에 파공이 발생했고,
파공된 부분으로 물이 거세게 들어오기 시작했어.
이런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조선 수군 일부가 갤리선에 난입해서 저항하는 승조원을 제압하였지.

조선 수군은 이날 총 49명의 포로를 노획했고,
포르투갈인 1명, 흑인 1명, 중국인 16명, 일본인 31명으로 구성되었어.

조선 조정은 수군의 기만한 대처를 인정하여
함대 지휘관인 신여량, 우수 등을 비롯해 28명을 승진시켰고,
수군 통제사는 은을 상금으로 지급받았어.

재미없는 글 읽어줘서 고맙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

<참고 자료>

1. 첫번째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대신, 비변사, 삼사를 인견하여 왜를 공격할 일, 둔전 설치 등을 논의하다
(조선왕조실록) 완풍군 이서가 전쟁에 쓰이는 말과 남한 산성의 형세에 대해 아뢰다

2. 두번째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함경북도 병마 절도사 정현룡이 올린 육진 오랑캐의 반란에 대한 치계

3. 세번째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경략에게 이자한 각진에서의 승첩과 노획 보고

4. 네번째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비변사가 공물을 감하여 백성을 도와야 한다고 아뢰다
(조선왕조실록) 중국 군사의 군량을 위해 둔전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망기를 내리다
(웹툰) 작가 은하님의 조선 황제 만력제

5. 다섯번째 이야기
신여량 장군 유품, '당포전양승첩지도'
조선왕조실록




출처: [역사] 가볍고 재밌게 보는 임진왜란 이야기 5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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