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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여사의 자서전 중 흥미로웠던 내용들

by JiNan's 201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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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 의대생 상태에서 중위 전두환과 결혼

=> 이순자 여사가 자퇴, 의사의 꿈을 포기했어야 함, 눈물흘렸으나 사랑을 선택
- 신혼 때 전두환이 그토록 원하던 미국 유학에 선발됨: 노스캐놀라이나 주 소재 Fort Bragg

- 1959년 심리전 학교 (psycological warfare) 6주=> 10일 휴식 => 특수전 학교 6주 수료 (노태우 중위와 동행)

-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산 미공군 기지에서 현대식 화장실 구경,

포트 브랙 식당에서 우유 처음 마셔봄(막걸리인 줄 알았음)
- 요구르트가 상한 우유인줄 알고 버리는 실수도 함,

미국의 광활하고 풍요로움에 놀랐지만 자기는 가난하고 어려운 조국이 더 좋다는 내용을

신혼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음
- 아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미국 체류 중 매일 하루 한끼를 굶어서 모은돈으로 코트를 사감
- 1960년 미국 포트 베닝에서 있는 미 육군 보병학교 특수전 정예코스인 Ranger course에 선발됨

=> 미군들도 중도포기, 부상 많이 당하고 위험한 내용이 많아서 당시 한국 장교들은 서로 안가는 분위기였고

이순자여사도 남편이 다칠까 만류했지만, 전두환의 고집을 꺽지 못함

- 훈련 내용을 적은 메모가 있는데, 영화 실미도 같은 류의 훈련을 실제로 함

(ex. 외줄 타고 강, 절벽 통과, 야생동물 사체+선인장 수분으로 극한의 식량 부족 상황 극복, 

눈 가리고 절벽에서 소총 매고 강에 뛰어내려 총기 분실 않고 헤엄쳐 나오기 등)
- 북한과 정규전 뿐 아니라 비정규전, 특수전도 다양하게 예상하고 연구, 

전문적인 훈련 등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엔젤두환의 한결같은 소신이었음
- 8주 과정 마치고 희망자만 신청하는 추가 선택 과정인 Pathfinder과정 자원해서 역시 성공적으로 수료함
- 패스파인더란 먼저 소수의 인원으로 적진에 침투해서 여러 여건을 확보한 후 후발 대원들이 도착하면 

이들을 안내 , 이끄는 역할, 정예요원 중에 정예
- "극한의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과, 지혜가 나옴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지옥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대원들이 추한 본성이 나오는 것을 두눈으로 목격했다"고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기술함
- 박정희 대통령이 5.16혁명 일으키자, 대위 신분으로 찾아가서 육군본부에서 박정희 장군을 독대신청해서 만남

=> 육사 생도들의 혁명지지 거리 행진을 자신이 성사시킨다고 말하고 실제로 이뤄냄, 

나중에 영부인이 왜 그런 위험한 일을 자처했냐고 물으니 한국은 큰 변혁이 반드시 필요했고, 

혁명을 지지하는, 반대하는 각각 생각이 다른 애국 군인들이 서로의 믿음이 달라 싸울경우 

결국 모두 북한에 당한다는 걱정, 생각에 어짜피 필요한 혁명을 하루빨리 성공시킬 일념밖에 없었다고 아내에게 말함

- 박정희의 총애를 한몸에 받게되어 비서관, 국회의원 자리 등 돈과 명예가 보장된 좋은 자리를 약속받았으나

전역이 아닌 군에 남고 싶다는 뜻을 박대통령에게 전하자

박대통령은 꼭 군에 남아야만 애국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를 만류함
- 결국 군에 남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아 박 전대통령은 "대위 전두환은 (남들과 다른) 특이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음, 

결국 "임자가 내 몫까지 군에서 기여하라"는 얘기를 듣고 군대 잔류를 허락받음

=> 군에 돌아가서 광주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에 들어가 계속 자기계발에 정진함

=> 이후 전방부대 대대장(당시계급 소령)으로 발령
- 이후 진해 육군대학에 들어가서 또 교육받음 - 장교들 간 공부 경쟁이 치열해서 전두환도 매일밤 늦게까지

전략 전술 등 연구, 공부, 여러 다양한 자료 수집 및 분석 에 몰입함 => 졸업 후 공수특전단 대대장으로 부임
- 베레모 쓰고 공수특전사 일원인 것을 어린아이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낙하산 타는 날이면 자기 지갑, 수첩 등 소지품 및 방을 깨끗이 청소 및 잘 정리해서 

집에 보이는 곳에 두고 나가는 남편의 습관을 우연이 발견함 

=> 처음에는 건망증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매번 그러는건데

늘 훈련하다 죽을 수 있음을 각오하고 자기의 마지막 길을 미리 정리하는 남편의 모습이었음
- 중령 진급 후 늘 경남 합천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한 움막집 아이라고 늘 놀림받던 보잘 것 없던 자기가

나라 지키는 군인, 중령이 된 것 아내 및 부모님 덕이라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함
- 중령 진급 이후에도 살림이 여전히 어려워서 남편을 돕고자 영부인은 정화미용기술학교에서 미용사 교육

그리고 예원편물학원에서 편물 기술을 교육받음 - 남편이 알면 마음아파할까봐 편물기계를 벽장에 숨겨놓고

남편이 출근하면 털실로 다양한 것을 만들어 팔고 돈을 벌음
-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특공조가 청와대 침투를 시도했을 때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한지 5개월째였음 - 무장 공비들이 검문 및 서류를 내놓으라는 경찰 최규식 총경을 사살한 순간으로 부터

1분내 박격포 조명탄이 터짐 
- 30경비대는 일요일도 빠짐없이 유사한 상황에서 조명탄 터트리는 훈련을 늘 해온 상태였고

결국 잘 대응한 공을 인정받아 38세에 대령으로 진급 및 육군참모총장 수석 부관으로 임명 됨
- 1970년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임명되어 베트남전 참전 - 베트남의 풍요로움, 비옥함에 한번 놀라고

전쟁의 참혹함에 두번 놀라 흡연을 이때부터 시작함 
- 베트남에 있는 내내 부하장병의 피흘림에 가장 흔들렸고 연대장이 되서도 구보를 할 때

제일 앞에서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부하들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의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함
- 영부인이 늦둥이 4째를 낳은 것은 유모차나 아기옷 하나 살수 없이 가난에 허덕였던

세아이의 육아와 달리 대령때 비로서 육아다운 육아를 할 경제적 형편 여유가 되었기 떄문이었음
- 월남전에서 복귀 후 공수특전단 복귀, 대령이 되서도 여전히 10km구보,

특전 강하 등 빠지지 않고 부하들과 일체가 되려고 함 - 영부인은 네아이의 아버지가 잘못될까 늘 전전긍긍하심
- 1973년 준장 진급 , 특전단장으로 한반도 상황에서 과하다는 반대에 부딛친 천리행군을 실시하여

강군으로 조련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찰한 자리에서 잘 조련된 특전단을 보고 손수건을 꺼내

눈가로 가져가시면서 눈물을 흘리심 
- 전두환이 강군 조련에 매진한 이유는 월남의 패망을 보고

미군의 지원과 우수한 장비로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자각 +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의 실력에

공포감을 느끼고 더 강한 군대 육성의 필요성을 체감했기 떄문이었음
- 제일먼저 훈련에 앞장서서 모두를 힘들게 하는 눈치없는 특전부대장이었지만

5년 못되게 지휘관으로 있는 동안 각종 비용을 절감해서

14층 짜리 독수리 아파트를 지어 부사관 및 장교들을 입주시키고 군인 자녀들의 장학금을 지급함
- 잠시 윤필용사건으로 특전단을 떠나 대통령 경호실 근무를 하다 1978년 최전방 보병 1사단장에 부임함
- 부임 후 업무 파악을 위해 100일간 부대에 머물며 연희동집에 단 하루도 귀가않고

전방 상황을 숙지 - 스스로 외출외박 금지를 내림 (아이들은 아버지가 100일 안나타니 난리가 남)
- 천둥번개, 폭설 등 날씨가 안좋으면 그냥 직접 초소 소대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체크를 빙자한 격려, 

따뜻한 말을 잊지 않았음 - 전방하급 지휘관이나 가장 힘든 곳에 근무하는 장병들이 눈에 밟힌다고 사단장 부인에게

연희동에서 커피와 육개장을 만들어오게 시킬 정도로 부하 사랑이 각별했음
- 결국 부친(당시 서독 파견, 출장), 모친 (최전방 1사단장으로 부대에) 임종을 모두 근무지에 있다 못지킴
- 최전방이라는 상황 특성 상, 결국 아무리 훈련을 강하게 해도, 병사들이 죽음의 공포 때문에 너도나도 몸을 사림 

=> 간첩 생포 또는 사살시 1년 특별휴가 + 사단장 1년 연봉 특별 상여금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걸어서 동기부여를 함
- 워낙 파격적인 포상이라 그때부터 서로 GOP 근무를 하려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귀순자를 통해 간첩은 못잡았지만, 

1사단이  제3땅굴 발견 쾌거 까지 이뤄냄 (귀순자가 1사단 어딘가 땅굴이 있을거라는 첩보를 줬지만 

실제 발견은 4년이 넘게 포기 않고 그만 접자는 의견을 묵살하고 미친듯 찾아서 가능했음)
-제대하는 1사단장 사병들을 문산 역까지 사단장이 잊지 않고 배웅하고 한명 한명 손을 잡아주는 것을 잊지 않음
- 40대가 넘어 영부인은 포기했던 대학을 다시 만학하고자 연세대학교 어학당을 다님

(이때 배운 영어실력은 이후 주한 외교사절의 부인들을 만날 때 큰 도움이 됨,

영부인이 되서는 불어와 스페인어로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묻는 법도 공부함)

하지만 외대 영어영문과 도전했다가 낙방함
- 대통령이 되서 전두환은 경제살리기 밖에 몰랐고,

나라가 국민이 잘살기 위해서는 영부인도 대통령도 무역 세일즈맨이 되야 한다고 늘 강조함
- 레이건 대통령이 초청한 미국 국빈 방문이 영부인이 42살에 처음 해본 해외여행이었음
- 레이건-전두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영부인은 다른 방에서 미국 영부인 (낸시 레이건), 바바라 부시와 환담함
- 레이건의 환영사 "백악관 입성 후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첫 손님이며,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도움은 헛된 것이 아니었음, 한국을 소외시키는 북미 단독 접촉은 절대 없을 것이며

미군철수는 절대 없고 미국의 한국 방어의지는 확고함을 다시 강조드린다"

- 레이건 대통령은 소년같은 유쾌함과 낙천성을 보였으며 한국의 땅굴에 대해 관심이 많았음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질문을 해서 미국의 한국 방어의지를 전하기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함)

- 미국 대통령 내외의 환대는 정중했지만 진지했음

=> 발코니 같은데서 기자들이 찍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일부러 더 부둥켜 않고 우애를 과시해주고

공식 일정 뿐 아니라 차가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들어가지 않고 손을 흔들고 배웅함,

특히 미국 대통령 전용 헬리콥터까지 내줌

- 해외 순방은 늘 두가지 목적 밖에 없었음

1) 세일즈 외교로 가난 극복 2) 하계 올림픽 개최 염원 달성을 위한 지지
- 전두환 대통령은 특히 올림픽 유치를 통해 과거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얻고

가난해서 포기해야 했던 과거를 만회하고 국민들에게 희망, 자긍심을 회복시켜주고 싶어했음
- 싱가포르 리콴유와 대통령 전두환의 만남 => 장신의 백발 노인, 모범생 같은 이미지였음
- 첫 만남에서 리콴유가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영빈관을 방문

자신의 22년 통치, 정치 경험을 당시 집권 9개월차였던 전두환에게 공유함

- 다음 날 일정에 없던 비공식 만찬을 다시 리콴유가 열어 초대함

=> "자신은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사람을 사귈 때 과연 믿을만한 그릇인지 의심해보고

자세한 이력서 검토도 하는데 사실 전날 전두환을 만나보았을 때 자신이 검토한 이력서 등 서류에 들어나지 않은

전두환의 직관, 진실함에 감동했다고 전함"
- 박대통령 유고 이후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음을 전하고

북한 김일성을 경계할 것을,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자주국방에 많은 돈을 써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를 일으켜야 하니 어려움이 더 클 것이라 조언 함
- 올림픽 유치전

=> 남덕우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조차 일본 나고야에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으나

대통령이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우고 싶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음,
- 노신영 당시 외무장관이 술회했듯,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막강한 로비력, 경제력, 정치력

거기에 이미 동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전력까지 다 감안해서 모두가 다 어렵다고 포기하는 분위기였고,

대통령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우리도 한번 행운이 올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대통령 입장에서는 너무 간절했음

- 아프리카 등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에 대한 순방외교

=> 주로 반미 성향이 강한 나라들이 많은 바, 이들 나라의 마음을 얻는게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최선이라고 대통령은 보았음

(남북 구분을 못해 북한 국가를 연주하는 나라도 있었지만 알고보니 아프리카 나라들도

당시 진행되던 김일성 신격화에 내색은 못했지만 속으로 이건 아니다 식으로 좀 반감이 있는 상태였음) 
-  아프리카 순방 후 귀국길에 우리 원양어선이 많이 머무는 스페인령 라스팔마스를 일부러 들림

=> 생선 비린내가 나는 선원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고맙다고 악수를 하는 이상한 대통령과

영부인에 다들 어쩔줄을 몰라함
- 캐나다 방문

=> 생뚜안느 보훈 병원을 찾았는데 휄체어를 탄 백발의 참전용사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고 헬리콥터를 타고 온 대통령을 맞이함,

일부는 장님이 되어 다른 병실의 동료가 상황을 설명

("우리가 싸운 한국에서 대통령이 오셔서 자네 앞에서 자네와 악수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네")해줌,

전두환은 악수하면서 이미 울고 있었고, 참전용사들도 같이 울음
- 아웅산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생존

=> 버마 외무장관 차가 고장이 나서 3분을 지각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서 화를 면함,

북한 테러 공작조 3인중 한명은 사살, 한명은 사형 또 한명은 무기징역으로 옥사함
- 생존자들을 보러 병원에 갔는데 너무 처참해서 어쩔줄 모르는데 피투성이가 된 최재욱 비서관이 전두환이

무사하셔서 다행이라고 말함, 영부인은 버마 대통령 영부인이 옆에 있는줄도 모르고 대성통곡을함
- 아웅산 테러로 김재익 경제 수석 등 인재들을 보내는 국민장례식을 한 이후에도 엔젤 전두환은

밤에도 혼자 일어나 눈시울을 적시는 일이 잦아짐 
- 당시 외국 정상들은 다 국제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기던 거인들이 많았음

=> 캐나다 트뤼도(현 트뤼도 총리 부친), 영국 대처, 미국 레이건,

일본 나카소네(그는 과거사 사죄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진심임을 강조함),

싱가포르 리콴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독일 콜, 프랑스 미테랑
- 일왕의 사과를 더 구체적으로 받았어야 하지 않냐 다그치는 이가 있었으나 상대를 배려했고,

일왕은 면담 후 다음 날 귀국길에 오르는 전두환 부부를 위해 다시 배웅을 오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임

- 새생명 심장재단 설립

=>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한국 국빈 방문 후 귀국하는 에어포스원에 한국 심장병 어린이 두명을

미국에서 수술시키기위해 태워가는 장면이 언론을 탐

=> 우리 아이들을 미국 대통령도 저리 챙기는데 우리는 무엇을 했냐는 반성과 함께

재단 설립 4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심장 수술을 받게됨 
- 김대중이 다시는 정치 안하겠다는 약속, 앙망문

=> 영부인이 엔젤 전두환에게 물었고,

평생 정치만 한 사람이니 자신이 뱉은 말을 스스로 못 지킬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음
- 가혹한 정치적 보복을 한 김영삼 빈소를 엔젤 전두환이 조문 함

=> 전직 대통령들이 국민 앞에서 반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고

전직 대통령간 예의를 과거의 악연 때문에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념 떄문이었음

- 추미애가 여당 대표가 된 후 이승만, 박정희 묘소도 공은 공대로 칭찬하고

과는 과대로 비판한다는 입장으로 조문하려고 했으나 일정 이틀전에 결국 압력에 굴복 취소함

=> 전두환의 관용을 경험한 김대중은 그 역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으나 그 이후 사람들은 김대중 뜻을 따르지 않음 

https://youtu.be/IK138ccAV0U

 

 

출처: 이순자 자서전 중 흥미로웠던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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