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북통일 진열장/Fact 모음

440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던 조선

by JiNan's 2019. 4. 6.
반응형

통신사 박서생이 시행할만한 일을 갖추어 아뢰기를

일본인의 풍속이 노소없이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집에는 각기 욕실(浴室)을 설치하고, 여염(閭閻)마다 또한 여러 군데 욕탕을 설치하고 있는데

그 욕실의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탕(湯)을 끓이는 자가 각(角)을 불면,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내고 목욕을 합니다. 

비옵건대, 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왜관 한증(倭館汗蒸)·광통교(廣通橋) 등지와 

외방의 의원(醫院)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두 욕실을 설치하여 돈을 사용하는 법을 돕도록 하소서.

일본 상가(商街)의 제도는 시장 상인들이 각기 처마 아래에다 널빤지로 층루(層樓)를 만들고 물건들을 그 위에 두니, 

다만 먼지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를 보고 살 수 있었으며

시중(市中)의 음식물들을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모두 사 먹고 있었습니다. 

리 나라의 시장은 건습(乾濕)할 것 없이 모든 어육(魚肉) 등의 식물들을 모두 진토(塵土) 위에 두고는 

혹은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밟기도 하오니

비옵건대 운종가(雲從街) 좌우의 행랑(行廊)에서부터 동쪽 누문(樓門)에 이르기까지, 

종루(鍾樓) 남쪽에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첨(補簷)을 달아내고, 

그 아래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을 층루를 만들어, 

어느 간(間)은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고 죽 편액(扁額)을 달아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 12월 3일 을해 5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112003_005

세종 11년 = 1459년

 

1900년경 한양 시장의 사진

1900 - 1459 = 441

 

 

출처: 440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던 조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