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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진열장/대한민국

1909년 오스만제국 사신의 조선인 평가

by JiNan's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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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라쉬드 이브라힘은 오스만 제국의 사신으로 일본과 조선을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방문해서 여행기를 썼으며 그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1909년으로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1년 전이다.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들어온 것이 조선 방문의 시작이며 그는 조선인이 타타르족과 흡사하게 생겼다며 그들이 이곳에 일하러 온게 아니냐고 착각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조선인들이 이슬람 관습과 유사하게 여자들만의 안채가 따로 있어 외부인사나 외국인들이 안채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과 씨름이 타타르족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

하얀옷이나 머리에 쓰는 털모자, 여성들의 복장을 보고 많은 점에서 타타르스탄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조선의 장래에 대해 희망적인 요소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며 차라리 문화적, 종교적, 정신적으로 유사한 일본과의 합병이

가장 적실하고 현실적으로 유익한 방도라고 결론을 내린다.

일본의 지배가 한국에게 유익할 것이고, 적어도 러시아의 지배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것을 친해진 조선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신은 여행을 마치고 난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독일에서 반러시아 투쟁에 종사한다.

그 후 종전 이후인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87세로 죽을 때까지 이슬람교를 일본 내에서 선교했는데 고베에 있는 이슬람 사원이 이 사람이 세운 것이다.


1. 처음 본 조선인

조선인들을 처음 본 순간 타타르족을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그들과 의복도 많이 비슷하고 얼굴형도 너무 똑같다. 배위에서 그들을 처음으로 본 순간 어떻게 타타르족들이 이곳까지 와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조선인들은 나같은 무슬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것 같았다. 나를 서양인으로 착각하고 잘 대해주는 것이 눈에 보였다.


2. 부산의 모습

부산은 해안을 낀 무역항이다.

자연적인 조건에 의한 항만과 마을과 성이 형성된 도시다.

주민은 대부분 조선인이고 관리와 군인들은 일본인이였다.

토착 조선인들의 거주지는 너무 지저분하고 초라한 갈대로 만든 집들이며 산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자리잡고 흩어져 있었다.

정말 초라하고 남루한 사람들의 집으로 나의 조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이런 집에서 살지 않는다.

두 시간을 부산 성내를 돌아다녔는데 갈대집이 절대다수였다.

또 일본과 매우 다른 모습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놀랍게도 여자들이 아무것도 머리에 쓰지 않고 남자와 돌아다니거나

혼자 다니는 것도 흔히 보는데 조선은 길거리에서 여자들을 볼 수 가 없었고 아무 집에 들어가도 남자들만 있고 여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갈대집들에 들어가봐도 남자들만 있다는 점이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졌다.

여자들은 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니 노랍게도 우리 무슬림들처럼 조선에서도 여성들의 안채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부인이나 외국인들이 안채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금지되어 있으며 안채로 향하는 대문도 따로 있었다.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는 풍습도 똑같다.

일본인 역무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일본인 거주지로 가서 묵으라고 조선인들의 갈대집에서 묵으면 불편할 것이라며 권하지 않았으며 안채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안채에 외부인이 들어가면 명예와 가문의 손상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3. 조선인의 생활 모습

조선인들은 이슬람교에서 금지하는 술을 거의 매일 즐긴다.

우리 무슬림들과 비슷한 문화가 많으나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달랐다.

이후 씨름이라고 불리우는 그들의 레슬링을 관람했는데 그것도 놀랍게도 타타르족의 레슬링과 비숫했다.

조선인들의 흰 복장들과 타타르족이 입은 가젤 외투, 머리에 쓴 타타르족이 쓰는 것과 비슷한 털모자 모든 것이 타타르스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어는 서로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는 거의 먹지 않는 쌀을 즐겨 먹는다는 것도 달랐다.

그날 너무 늦게 돌아다녀 날이 어두워져서 묵을 조신인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도저히 깨끗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야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없이 한 갈대집에 들어가서 사정을 말하고 그 집에서 묵었다.

쉽게 허락을 받아냈지만 지내기가 너무 편하지 않았다. 지저분한 집안에 방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들은 무슨 방을 증기탕으로 사용하는 건가 한숨도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그 집에서 나와 외곽 마을을 둘러봤다.

일본 평야 지대에서는 말을 타고 다니는 거 외에 가축을 한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조선에서는 가축떼들이 30마리 이상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소와 말 당나귀가 자주 보이며 조선인들은 양을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돼지를 키운다는 것을 알고 혐오스럽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과는 달리 호랑이가 서식하기 때문에 야산에 함부로 올라가지 말것을 당부했다.

부산을 떠나면서 조선은 국민 의식이 마비당하고 지배당해 가는 민족이라 이 모든 생명의 작품들도 생기가 없어 보인다.

생명력이 있다면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뿐이다.

깨끗하게 꾸민 동네가 있다 싶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일본인 주택이 몇개 있다.


4. 조선의 수도 한성

기차를 타고 며칠 걸려 조선의 수도 한성에 도착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게이쥬라고 부르며 주위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왕궁이 있다.

왕궁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조선인의 문화 유적을 칠만한 작품이 얼마 없는 것 같다. 가옥과 상점들도 모두 단층으로만 지어졌다.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건물들로 오히려 러시아의 시골이 질서정연한 건물이 많은 편이다.

한 나라의 수도인데도 2층 건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그나마 있는 1층 건물조차 장식이나 규모에서 호화로운 맛이 없다.

귀족들의 집만 하층민들에게 위합감을 주려는 듯 담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다음날 이 나라 국왕의 신하 한 사람을 만났다.

이름이 제순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국왕조차 자유 방종에 빠져 국가의 존망이 위기에 처했으며 스스로 백성들이 자기를 통치보다 일본 정부 행정하에서 더욱 편하게 살아간다고 말했다.

자기네 나라에게 전혀 충성심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그는 또한 행정이 마비 상태라면서 백성들의 3분의 1이 일본 정부의 통치를 원하고 있다며 일본인이 들어온 순간부터 백성들이 자유의 분위기를 누리는 실정이라고 한다.

일본 통치하에서 수탈이 뒤따르지만 이를 알면서도 일본인을 원한다며 주요한 사회 복지 시설을 일본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나라에 길이 만들어지고 도시가 정비되고 전기가 들어오고 기차가 들어온 것이 일본이 이룩한 업적이라면서 말이다.

조선은 얼마 안가 사라질 것이다.

전국의 주요 행정이 일본 관리의 손에 넘어갔으며 이미 조선은 일본이 통치하고 있었다.


5. 조선의 여자들

여자들 중에 일부는 얼굴을 내놓고 자유롭게 보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조선 여자들은 무슬림 여자들처럼 얼굴을 천으로 가린채 길 외투를 걸치고 길거리를 다닌다.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외투를 쓰는 풍속이 부하라나 투르키스탄 등지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하는 풍속과 유사하다. 

얼굴을 가리지 않는 여자들도 일본 여자들과는 달리 교제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한 조선인에게 조선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데 어째서 얼굴을 천으로 가리는 비슷한 풍습이 있냐고 질문했다.

그가 말하길 500년이나 내려오는 윤리적 전통으로 보편적인 자연 현상이라고 했다.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남자들의 공격 근성을 유도하여 희생이 될 수 있기에 가린다고 했다.


6. 조선의 문화재

조선의 문화적 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은 성곽 정도 밖에 없다.

건축 양식은 생각하는데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니지 않은 것 같고 중국의 건물을 많이 본딴 것 같다.

조선이 독창적인 건물이나 고유한 문화적 금자탑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중심인 한성이 특별한 문화 유산이 없다.

그보다 고도인 개성이라는 곳에도 가봤지만 거기에도 특별한 예술성을 담은 유적은 없었고 평범하고 단순한 건물들 뿐이었다.

게다가 지방 도시라도 한성과 같은 양식의 건물들이었다.

나는 일주일 가량 조선의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조선의 장래에서 희망적인 요소를 찾지 못했다.

아마도 조선이라는 단어는 몇년 후에는 한 국가의 명칭이 아닌 한 지방의 명칭으로 사용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조선 현같은 상황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여건에 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다면 당분간 그들의 보호 아래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인들이 해야하는 가장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도는 일본과의 합병일 것이다.

일본인은 적어도 조선인과 어느정도 정신적 세계와 문화 배경이 같고 종교와 종족에서 친밀감이 있기에 합병은 어느정도 조선인의 사생활을 보호해 줄 것이다.

적어도 러시아인에게 지배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출처: 1909년 오스만제국 사신의 조선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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