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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전투를 감행했던 히틀러...왜그랬을까??

by JiNan's 202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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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알 수 없는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권력자의 몰락을 부른 결정적인 사건들에서는 항상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1944년 연말에 시작한 히틀러의 벌지전투(Battle of the Bulge)는 최악의 자충수였다. 

1943년의 독일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히틀러의 벌지전투가 왜 자충수였는지 되짚어보자.

1943년, 나치 독일에게 전황은 매우 어려웠다.
이때부터 소련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 공세로 나가던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북아프리카 전선이 무너지면서 연합군이 지중해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1944년 7월20일,
히틀러는 발키리 작전으로 널리 알려진 암살시도에 휘말린다.
지금까지의 일반인들에 의한 암살 시도와 달리 이번 암살 시도는 군부의 주요 인사들이 가담한 것이었다.
군부가 반기를 들고 있음을 짐작한 히틀러는 가혹한 숙청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군부가 반기를 들었던 이유는 결국 전황이 매우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나치 정권은 무장친위대와 비밀경찰에 의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불리한 전황에 대해 입을 놀리는 자가 있으면 노짱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동쪽에서는 소련군은 나날히 증강되어 가고 있었고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황을 되돌려놓는 것은 무리였다.
그 와중에 독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폴란드인들이 바르샤바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
1944년 8월에서 10월까지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이들은 독일군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하지만 바르샤바도 결국 소련군에게 빼앗기게 된다.)
나치의 지배를 받던 유럽인들이 반기를 드는 것을 막기 위해 나치정권은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1944년에 연합군이 노르망디 쪽으로 몰려들었다.
프랑스 방면의 독일 방어선은 무너졌고 히틀러는 이제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압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1944년 8월에는 파리를 탈환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하는대신 프랑스 해방에 더 집중했다.

히틀러는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양쪽에서 압박을 받았다.
그런데 위급한 쪽은 단연 동부전선이었다.
소련의 목적은 베를린 정복이었지만 연합군은 프랑스 해방을 달성하고 나서 한숨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부전선의 아이젠하워는 독일군의 전력을 정확히 몰라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연합군과는 어떻게든 휴전을 모색하고 소련군을 막는데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무렵의 히틀러는 정치인으로서도 이미 정상인이 아니었다.

1944년의 히틀러는 유럽정복에 대한 망상이 심해지고 있었고 군사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똥고집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암살사건 이후, 장군들에 대한 간섭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히틀러는 황당한 작전을 생각해낸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벌지전투(Battle of the Bulge)로 기록된 군사작전이다.

벌지전투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나치독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프랑스 정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의 구상은 간단히 말하면 1940년의 프랑스 정벌을 재현하려던 것 뿐이었으니까.

1940년 독일군은 벨기에 영토인 아르덴 숲을 가로지르는 루트로 침입하여 프랑스군의 통수를 친다.
프랑스군이 독일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한 마지노선은
1차세계대전과 같은 장기전에 대비한 것이었지 전차를 앞세운 속도전은 예상하지 못했다.
넘어선 안될 선을 넘었다는 의미로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말이 있는데 뭐...
독일군의 경우는 마지노선의 뒤로 돌아갔다. (지도에 그려진 빨간 선이 마지노선이다)

나치 독일 육군하면 티거나 티거2(통칭 쾨니히스티거) 같은 대형 전차들이 떠오르겠지만

실제 나치독일의 황금기 1940년을 이끌었던 전차들은 자그마한 1호와 2호 전차들이었다.
탱크의 화력 자체는 낮았지만 포장되지 않은 숲에서도 거침없이 달려서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다. 
이 당시에는 아직 독일의 원유 저장고가 풍부했다. 
게다가 이 때에는 공군의 엄호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44년이 되면서 독일은 물자난에 시달렸다.
그 중에서도 독일군을 가장 괴롭힌 것은 연료가 갈수록 부족해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1944년에는 독일 공군력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1940년과 1944년의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은 보지 못하고 단지 탱크의 성능이 향상된 점만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1호와 2호 전차들로 프랑스를 정벌했는데 그렇다면 티거를 앞세우면 더 빨리 프랑스를 먹을 수 있을 거 아냐?
이게 히틀러식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티거 전차들이 우수한 전차라 해도 공군력이 없이는 진격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 전차들(화력은 우수했지만 연비는 극악이었다)을 돌릴 기름의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정된 전력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동부전선에 투입하여 소련군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오로지 1940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히틀러가 계획을 짜는 걸 보면 문재인과 존나게 비슷하다.
이 두새끼들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지르긴 질렀는데 자동차를 사면 보험, 연료, 유지비 같은 부수 비용이 덩달아 발생한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 꼴통과도 같다.

문재인 정권이 자기들의 주요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 태양광, 북한 퍼주기 이 세가지를 밀어붙일 때의 공통점이,
장점(그것도 절반은 자기들만의 판타지)만 존나게 나불댄다는 점이다.
어떠한 부작용이 있고 어떠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점은 절대 언급 안한다. (결국 세금 투입 ㅅㅂ)

히틀러가 벌지전투를 밀어붙일 때와 똑같은 사고방식이다.
그냥 프랑스 정벌, 이것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히틀러의 망상이 일으킨 자살골이 바로 이 벌지전투로 알려져 있는데
'독일의 눈을 통해 본 D-Day'라는 책에서는 약간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히틀러는 자기 딴에는 매우 신중하게 데이터에 근거한 작전을 짰고
그래서 벌지전투가 정말로 성공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전쟁에 접근한 증거가 바로
다른 장군들 말 안 듣기로 유명했던 히틀러가 발터 모델 육군원수를 기용했고 그의 식견을 들었다는 점.
우수한 장군들이 하나둘씩 숙청당해 당시 독일에 아직까지 남아있던 인재는 발터 모델 뿐이었다.

경험과 식견을 갖춘 장군의 도움을 받아가며 작성한 작전인데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저 책에서 지적하는 것이 바로 당시 독일에 만연했던 통계 조작이었던 것이다.

나치 정권은 독일인들과 아직 나치의 지배를 받는 유럽인들에게 불리한 전황을 숨기기 위해
독일의 실제 전쟁수행능력에 대한 통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통계 조작의 핵심은 민중에게 가짜 숫자를 던져줘도 자기들만은 진짜 숫자를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만 히틀러가 조작된 통계를 믿어버렸다.
즉, 히틀러가 전황을 아직도 뒤집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은 망상이 아니라 지 딴에는 통계에 바탕한 근거있는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한번 히틀러가 조작된 통계를 믿어버리니 거기에 대해 진짜 숫자를 제시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진짜 숫자를 들이댔다간 목이 달아날 게 뻔한데.

강신욱 이 새끼가 림종석에게 감히 진짜 숫자를 말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ㅋㅋ

조작된 통계를 바탕으로 작전을 짜니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1944년 12월16일에 시작된 아르덴 숲을 가로지르는 독일전차부대의 진격은 1945년 1월26일에 그쳤다.
연합군의 거센 반격에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연료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진격하고 싶어도 진격할 수 없게 된 독일군은 중장비를 버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결국 실제 독일의 전격전 수행 능력은 한달 남짓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데 그걸 소련군을 막는데 쓰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소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를 조작하는 정권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새부터인가 자기도 진짜 숫자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통계를 조작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념을 민중에게 계속 주입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조작된 통계를 포기하라고? 그럼 이념을 포기하라는 소리 아닌가.
통계 조작은 마약이다. 그거에 한번 맛들이면 절대로 못 끊는다.

한편 벌지전투에서 독일군이 후퇴한 이유를 분석하던 아이젠하워는 독일의 실제 전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독일 본토로 진격해들어갔다.
동부전선의 소련군만 해도 벅찬 상대인데 이제 서부전선에서까지 쳐들어오니 히틀러의 병신짓은 문재인의 병신짓과 노무노무 비슷하다.
중국에게 쳐맞고 미국에게도 욕 먹고... 히틀러하고 대체 차이가 뭐냐?

히틀러는 벌지전투의 패배가 자신의 무모한 작전이나 조작된 통계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장군들에 대해서만 분통을 터뜨렸다.
모델 원수는 베를린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루르 방어선에서 연합군을 막다가 패배하자 자결을 택했다.
히틀러는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하는 순간까지도 망상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통계 조작이란 게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세줄요약: 
1. 통계 조작하는 새끼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봄.
2. 통계 조작에 한번 맛들이면 못 끊음
3. 강신욱 존만한 새끼 너 두고 하는 얘기야.



출처: 히틀러는 왜 벌지전투를 감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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