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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진열장/대한민국

김구선생이 까일수 밖에 없는 이유...

by JiNan's 201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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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들은 1948년 김구의 변절적 행보를 좌우합작 운동이라고 미화하고 

이를 활용하여 이승만의 건국을 비판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에 의해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것이다. 


1947년 12월 3일자 경향신문 1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三領袖意見一致(삼영수의견일치) 金博士(김박사)도南朝鮮總選擧(남조선총선거)를認定(인정) 

今後問題(금후문제) 結合(결합)의方式(방식)뿐



또한 독립운동부터 건국까지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대안으로 존재했다는 식으로

이승만이 없었어도 김구가 있었으니 이승만을 존나 까고 안빨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좌파 찌질이들은 대한민국은 김구가 건국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태어나고 발전할수 있을거라는 망상을 하고 있던거였다. 


과거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은 김구를 아주 극혐했다. 

김구는 정치 스펙트럼으로 볼때 극우주의자가 맞다.   

하지만 좌파진영은 김구의 과거행적을 따져보지 않고 지나치리 만치 성역화 하고 있다. 


좌파들의 성역화가 아니였으면 김구는 1948년을 제외하고는 이승만과 협력적 관계 였었고 

흑역사는 가볍게 묻히고 갈수 있었는데 좌파들이 이승만을 사소한것까지 크게 디스하고 

김구를 부각하면서 흑역사가 자동으로 딸려 나온것이다.

냉철하게 보면 좌파들은 극우 김구를 빨아줄수 없음에도 이승만 깔려고

진정한 민족 지도자라고 빨다보니 김구에 대한 흑역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이승만이 독립운동 자금을 착복했다고 하면서 김구의 돈과 관련된 수많은

흑역사가 튀어나온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건 레닌이 지원한  공산계열 자금이 

임시정부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산주의 항일 운동가 김립이 암살사건이다.



[선택! 역사를 갈랐다] ( 35)독립 운동가 ‘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119021002


좋다 김립이 공산주의자이니까 김구 입장에서는 반공성향이니 당연하다고 볼수도 있겠다. 


그럼 항주 임시정부에서 윤봉길 폭탄투척 사건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후원금을

서로 착복했다고 의심하고 디스전을 벌이다 김석 투서사건으로 김구 일파가

당시 임시정부 재무부장이였던 김철을 포함한 조소앙 김석을 폭행하고 소지금까지

빼았은 항주 판공처 습격사건은 무엇???????


폭탄사건 후에 있어서의 金九 일파의 기타 동정 보고 (1932년 11월 10일)



독립운동 시절 돈때문에 이승만이 같은 독립 운동가 누굴 때리고 돈까지 빼앗은적 있었음?????

이승만은 오히려 사용처를 명확히 해서 늘 영수증을 첨부하였고 임시 정부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좌파 역사학자들을 개인적으로 개새끼들로 보는 이유가 

이승만을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까면서 임시정부의 흑역사를 철저하게 가린다는 것이다.


1943년 임시정부 인사 한명이 국민당 고위간부 주가화에게  보낸 보고서를 보면 

교과서로 배우는  역사와 전혀 다른 충격적인 내용이 튀어나온다. 


한국혁명진영 내부의 분규와 난맥상에 관한 보고 및 건의 (1943.09.23) 라는 

내용의 보고서 인데 이중 돈에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면 이렇다. 


    첫째, 이른바 김약산 계열의 김구 계열에 대한 암살음모 사건입니다.

다만 그 진상이 어떠한지는 국외자들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둘째, 金九 · 濮純 · 趙琬九 등이 국민당중앙이 한국임시정부에 제공한 보조비 

가운데 10만 원을 횡령한 사건입니다.


     셋째, 국민당중앙이 추가로 지원한 20만 원을 김구 일파가 횡령한 사건입니다. 

이 문제는 吳鐵城 (오철성)비서장의 函電(함전)이 공개되면서  

비로소 그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내용은 이렇다.


三. 김구 일파의 죄악    

1. 지난 4~5년 사이에 한국혁명단체는 10여 차례 통일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김구 일파의 반대와 파괴로 통일노력은 실패로 마감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국제지위는 날로 저하되고 혁명운동은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구 일파는 왜 통일을 반대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한국혁명단체가 통일되면 중국이 지원하는 보조금과 미주 교포들의 애국금을 독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통일운동이 성공하면 반혁명세력이 혁명세력에 의해 도태될 것을 염려하여 통일운동을 적극 반대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2. 約憲에 의하면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의원수는 53명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5~6년간의 상황을 보면 한국독립당 당적을 가진 겨우 15~6명의 의원이 의정원을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규정된 의원수를 맞추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약헌의 규정을 위배한 것일 뿐만 아니라 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3. 개회기간에도 중국 군인과 헌병을 동원하여 의원의 의정원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4. 郭泰祺(곽태기 ) 선생이 외교부장을 맡고 있을 당시부터 중국정부는 이미 한국임시정부 승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김구 일파의 파괴로 통일운동이 실패로 마감된데다

김약산이 곽 부장에게 편지를 보내 김구가 이끄는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말도록 요청하여 일이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자 한인들은 저들을 제2의 李完用이라 욕하고 있습니다.


5. 김구 일당은 중국방면에서 매달 지원하던 6만 원의 보조금은 착복하였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저들은 중앙당부에서 임시정부에 제공한 10만 원의 보조비도 횡령하고 

지금까지도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20만 원으로 증액된 보조비도 중간에서 가로채려 하였으나

오 비서장이 보낸 函電으로 음모가 들통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6. 김구 일당은 혁명동지들을 공산당 혹은 적의 첩자로 몰아 중국 군경당국에 밀고하곤 하였습니다.


       7.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 수많은 혁명동지들을 암살하는가 하면 

사사롭게 계파를 이뤄 온갖 죄악과 반혁명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미국 OSS가 작성한  부정적 임시정부 보고서라든지 장개석의 광복군 9개 준승요구 사항이라는 


족쇄도 사실 그 이면을 알고보면 왜 임시정부가 승인받을수 없었는지도 이해할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파벌싸움 즉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반목하고 주도권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945년까지 300여명 수준의 광복군이 국내진공을 할려고 했는데 

일본의 패망으로 승전국이 될수 없었다는 망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수십만이 독립을 위해 연합국과 함께 싸우고도 승전국은 커녕 소련 위성국으로

전락한 폴란드 사례만 봐도 알수 있는것을 가지고 망상질 한다. 


임시정부의 항일 운동의 의지나 노력은 인정할수 있어도 스스로 해방할 능력이 

전무했다는게 객관적인 팩트이며 부정못할 진실이다.  

또한 우리는 해방과 광복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진정한 독립운동의 완성은 대한민국 건국이였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이 일제로부터 조선을 해방시켜준것은 부정못할 팩트



개인적인 생각으로 1945년 8.15일은 광복이 아닌 해방절이고

1948년 8월 15일이 건국 또는 진정한 광복절이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김구는 대한민국이라는 건국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훼방수준에

가까운 행보(1948년 기준)가 있었던것을 감안하면 그의 업적은 항일운동까지만 인정이 될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좌파들이 까고 김구를 부각하지 않았다면 나름의 ㅍㅌㅊ 지도자로 

평가받을수 있었지만 이승만을 까기 위한 수단으로 김구를 활용하고 과도한 성역화가 불러온 결과다.


우리는 좌파들이 만들어놓은 허상 국뽕의 역사에서 벗어날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래야 이승만 박정희가 만들어논 위대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할수 있는 거다. 



출처: 김구가 까일수 밖에 없는 EU Feat. 좌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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