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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진열장/대한민국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국적은

by JiNan's 201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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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건이 공개되었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그 진실을....

뱅모 박성현 주필께서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설명해 주었다....

페이스북의 글을 가감없이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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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뱅모


뉴시스 노창현특파원이란 사람이 엉뚱한 기사를 써서, 갑자기 이승만 [국적] 이슈가 불거졌다. 

무식하면 무슨 짓을 못할까? [국적] 문제가 나오면, 우남 이승만이야말로 가장 당당한 사람이다. 

안창호는 (아마) 미국, 일본, 중국 3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김구는 중국, 일본...두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중국, 일본 국적이다.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당근, 중국인이어야 한다)

이승만은? 무국적자였다. 

국적을 따질 때, 여기에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서류를 보아야 한다. 하나는 여권이다. 다른 하나는 체류국에서 작성한 여러가지 서류들에 기입하는 것이다. 

이승만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여권'을 사용한 것은 1912년 서울 --> 동경 --> 요코하마 --> 미국으로 갔을 때였다고 보인다. 이 여권은 당연히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여권, 즉 일본 여권이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은 [105인 사건 핵심 배후]로 지목되어 살벌한 처지에 놓였을 때였다. 이승만은 [세계 감리교대회에 참석하는 한국 대표] 자격으로 출국했다. 그 대회에서는, 미국 감리교 지도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대한 규탄을 엄청했다 (아마, 이 사건으로 감리교단과 이승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구명운동을 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였기 때문에 ..미국 지식인/정계/언론인들을 설득해서, 일본에 압력을 넣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결과 1심에서는 105인 전원 유죄였지만, 2심에서는 6명만 유죄였다. 


이승만은 1912년 이후에는 [여권 없는 사람], 즉 무국적자로 살았다. 그래서 그가 미국을 떠난 것은 두 번 밖에 없다. 온갖 어레인지를 해야 미국을 떠나 여행할 수 있었다. (안창호는 미국시민권 여권, 중국 여권 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한번은 1922년 상해 임정에 몇 개월 간 방문했던 것...이때는 하와이에서, [중국인 노동자 시체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배]의 [시체 창고]에 숨어서 밀항했다. (처음 며칠동안 창고에 숨었고...나중엔 ..선장을 사귀어서 선원들과 같이 지냈다)...돌아올 때에는 필리핀으로 밀항해서 귀국했다. 

다른 한 번은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우남은 이 회의에 참석한 후 소련을 하루 방문했고, 돌아 오는 길에는 이탈리아 등 유럽을 8,9일 돌고 영국을 통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때 이승만은 특이한 여권을 썼다. 자신이 직접 문안을 잡아서...미 국무장관과 법무장관이 서명한 여권이었다. 이는 [망명중인 한국인을 위해 미 국무성이 만든 여권]이었다. 그 물리적 형상은, 종이 서류였다. (수첩형태의 여권이 아니라!!!) ...즉 [미국이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미국여권인데, [미국 시민/영주권자를 위한 여권]이 아니라 [무국적의, 망명인을 위한 여권]이라는 점에서는 미국여권이 아니다....

뉴시스 노창현기자라는 이상한 사람이 쓴 기사는, 1918년 --즉 제1차세계대전 중 [징병관련 진술서]에 대한 것이다. 무식한 것인가, 배배꼬인 것인가? 1918년이면 세계대전이 진행중인 때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냉혹한 국제법 상의 소속] 외에는 다른 일체의 정보를 기재할 수 없다. 그리고 냉혹한 국제법 상의 소속으로, 1918년 이승만은 '일본 소속' ...맞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1942년, 하와이 거주 일본인들이 강제수용 당했다. ...1941년 12월의 진주만 습격에 격분한 미국인들이...하와이 거주 일본인들을 격리 시켰던 것이다. 이때 한국인들도 처음에는 함께 강제수용당할 처지였다. 국제법의 논리로는, 한국인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이승만등, 독립운동가들이 나서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인과 일본인의 민족이 다르다는 점,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을 미워하며 독립을 원한다는 점을 설득해서........한국인들이 강제수용 당하는 것을 막았다.... 

이 무식한 노창현이란 기자에게 딱 한마디만 묻고 싶다. 


1) 1912년 이후 1945년까지 이승만의 국적은? 그의 여권은? ==> 없다. 무국적자다...
2) 이 기간, 김구, 안창호의 국적은? (안창호는 중간에 사망)...그들의 여권은? ==> 일본,중국, 미국(안창호의 경우) 중 2~3개 이다. 
3) 이 기간(김일성은 1912년 생), 김일성의 국적은? ==> 일본, 중국이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원이다. 즉 요즘 말로 "조선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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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좀들의 거짓 선동에 넘어가지 마세요....

그 당시에는...이승만 대통령 뿐만아니라....무수히 많은 독립투사들....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모두...

대한민국 이라는 국적이 없던 시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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