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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진열장/Fact 모음

일제시대 조선 왕실의 삶.

by JiNan's 201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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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병탄 직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자리를 함께한 조선 총독부 고위 관리들과 대한제국 황족들.

앞줄 가운데 모자를 벗은 사람이 고종 황제이고 그 오른쪽이 순종임.



 순종 황제는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음.


"번잡스럽게 소요를 일으키지 말고 차분히 생업에 열중해라. 동시에 일본 제국의 문명화에


복종해서 행복을 누려라. 짐이 오늘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오로지 그대들 민중을 구하고


싶은 필사적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제국은 '이왕가'로 몰락한 옛 조선 황실에 매년 120만엔의 교제비를 지원했어.

일본 방송인 혼다 세쓰코가 1988년 써낸 <비련의 황태자비 이방자>를 보면 

"120만엔의 수입은 천황가에 다음가는 거액의 비용이었다."

(그 무렵 총리대신의 연봉이 1만엔가량)이며



"그 때문에 많은 일본의 황족과 화족들은 이왕가를 부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적었음.



이후 영친왕은 '왕족'이라는 신분을 바탕으로 일본 군부에서 승승장구함.


그는 17살이던 1913년 11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17년 5월 졸업했고 같은 해 12월 5일 육군 소위로 임관함. 


그로부터 3년 뒤인1920년 12월 7일 일본 군부의 핵심 엘리트가 될 사람들만 가려 뽑는 육군대학에 입학함.


일제 36년 동안 한국인으로 일본 육군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영친왕 이은, 

의친왕 이강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 그리고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으로 근무한 죄로 2차 대전 이후 교수형당한 홍사익 중장 등 4명뿐...

이후 영친왕은 1931년 8월1일 대좌(대령)으로 진급해 보병 59연대장을 부임했고, 

1938년 7월에 소장으로 진급한 뒤, 1939년 8월 근위보병 제2여단장,

1940년 5월 오사카 사단장을 거쳐 1940년 12월 육군 중장으로 진급함.



해방 이후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은 1947년 10월 '모모야마 겐이치'라는 창씨명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해 일본에 동화되기도 했다.



와우...

판타스틱!


출처: 일제시대 조선 왕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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